[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정부가 17일 불법고금리와 채권추심 등 불법사금융 척결방안을 발표하고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브리핑룸에서 담화문을 통해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접수, 특별단속 실시, 피해자 구제를 위한 지원 등이 포함된 불법사금융 척결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특히 불법 사금융이 신용도가 떨어지는 취약계층의 서민 경제에 깊숙이 침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다음달 31일까지 금감원·경찰청 등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하고 1만1천500명의 정부 인력을 투입하는 강경책을 내놓았다.
불법사금융으로 인한 피해가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해질대로 심각해진 상황에서 뒤늦은 감이 있지만, 고금리는 물론 사채업자들의 협박에까지 시달리고 있는 서민들에게는 오랜만에 들려온 반가운 소식이다.
김 총리가 언급한 것처럼 불법사금융은 우리 사회를 파괴하는 `독버섯’같은 존재가 됐다. 하지만 서민들은 뻔히 알면서도 상황이 워낙 급박하다보니 이 독버섯을 뜯어 먹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사금융 관련 상담건수에 따르면, 2009년 6114건이었던 상담건이 2011년 2만5천535건으로 2년새 4배가량 증가하는 등 사금융은 서민 경제에 이미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그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김 총리는 이날 담화문을 발표하며 딸이 사금융으로부터 빌린 300만원을 갚지 못해 유흥업소에서 강제취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딸을 살해하고 자살한 아버지의 사례를 언급했다.
지난 2009년 충남 서천에서는 지적장애 2급인 부부가 생활비로 사채 350만원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자 사채업자가 임신 5개월 된 태아를 강제낙태시키고 노래방 도우미로 강제 취업시킨 사례도 있었다.
또 지난해 한 40대 여성은 생활정보지에 게재된 등록 대부업체의 광고를 보고 대출을 신청을 했으나 선(先)공제금과 미상환시 연장이자 지불 등에 따라 상상하기도 힘든 연 이자율 3천476%의 조건을 제시받기도 했다.
경북 포항의 주점 여종업원 3명이 잇따라 자살했던 사건도 무등록·불법채권추심 등 불법 대부업법과 관련있었다.
은행 등 제도권 금융사들도 서민들의 불법사금융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유럽 재정위기로 실물경기 회복이 늦어지면서 경기변동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취약계층의 금융수요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소득 5분위 중 저소득층에 속하는 1분위 가계는 56.6%가 적자재정상태여서 이들은 당장의 생활비나 학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권의 문을 두드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제도권 금융사들은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에 따라 가계신용관리 강화하면서 서민금융을 대폭 줄이고 있다. 특히 경기불안으로 서민들이 이자를 제 때 갚지 못해 연체가 늘어날 것을 우려해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의 문턱을 더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미소금융 등을 통해 서민금융 지원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저신용등급(7∼10등급)에 속하는 채무자의 1인당 평균 비주택담보대출금액은 올해 1월 2천649만원으로, 2009년 대비 0.3% 감소했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민대출의 대출기준마저도 충족하지 못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서민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급하게 돈이 필요한 취약계층은 결국 고이자의 대부업, 사채 등 사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반영하듯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08년 9월 130만여명이 대부업체에서 5조6천억원을 대출받았으나 지난해 6월에는 247만여명이 8조6천여억원을 대출했다. 대출금액이 53% 증가하는 동안 대출인원이 90% 증가한 것은 서민들의 소액 대출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또 서민들은 사금융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불법고금리, 대출사기, 불법채권추심 등의 피해를 겪는 경우가 많다. 제도권 금융사와 정부가 독버섯과 같은 불법사금융으로 서민들이 내몰리지 않도록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늦게나마 정부는 불법사금융 피해자들의 신고·상담을 받는 동시에 불법채권추심을 근절하기 위해 집중단속을 실시하고, 검·경이 보유한 범죄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조직폭력배 등 배후세력을 발본색원하는 등 불법 사금융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법정금리를 초과한 이자를 강요당하거나 폭행·협박·심야방문과 전화로 고통 받고 있다면, 정부를 믿고 대표전화 1332번으로 적극 신고해달라"고 말했다.
불법 사금융 피해자들은 대표전화 1332번으로 금감원에 신고하거나, 112번으로 경찰청, 서울·경기·인천·부산 등의 지방자치단체는 120번으로 신고할 수 있다. 금감원, 경찰청 인터넷 홈페이지나 방문접수를 통해서도 신고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