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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컬럼] 스티브 잡스의 죽음과 한국

애플의 공동창립자인 스티브 잡스가 지난 5일 세상을 떠났다. IT시대의 꽃을 피운 천재였지만 암이라는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다. IT업계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린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 투병 끝에 사망하면서 글로벌 IT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세계 주요 IT업계 CEO들은 잡스의 상상력과 창의력, 도전정신에 경의를 표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스티브 잡스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CEO로 그의 창의력이 놀라운 회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도 "스티브 잡스처럼 영향력이 있는 인물은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잡스의 일생은 말 그대로 한편의 드라마나 다름없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애플을 창업하면서 정보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혁신가의 길을 걷게 된다. 지난 1976년 세계 최초의 개인용컴퓨터(PC)인 매킨토시를 내놓아 컴퓨터의 대중화를 앞당겼다. 2007년에는 주머니 속 컴퓨터로 불리는 아이폰을 개발해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고 뒤이어 내놓은 태블릿PC와 함께 모바일 혁명을 주도했다. 그에게 항상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를 시험하듯 좌절도 많았고 보통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행도 적지 않았다. 그가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나기도 했고 1997년 이후 14년 동안 애플을 이끌면서 연간 1달러, 총 14달러밖에 받지 않았다. 애플을 창업하고 CEO로 일하는 목적이 돈벌이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자신이 표현한 대로 '항상 갈망하고 늘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 삶을 영위했다. 암 선고를 받고서는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며 스마트폰 신화를 일궈내는 투혼을 발휘했다. 잡스가 위대한 혁신가로 살 수 있었던 것은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애플의 사시(社是)가 된 잡스의 창의적 사고에 대한 열정은 아이폰ㆍ아이패드등 다양한 i시리즈로 이어지는 애플 신화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다.

잡스가 IT업계에 남긴 성과는 상당하다. 그는 2010년 태블릿PC인 아이패드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포스트PC시대를 열었다. 또한 아이폰으로 휴대전화 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손안의 컴퓨터로 불리는 아이폰은 전 세계를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애플을 일약 글로벌 IT업계의 강자로 만들었다. 이들은 잡스의 혁신과 창의성을 대표하는 제품이다.

애플은 추도사에서 "잡스의 영민함과 열정ㆍ에너지가 혁신의 원천이 됐으며 이로 인해 이 세상은 풍부해지고 개선됐다"고 칭송했다. 잡스가 타계함으로써 그가 마지막까지 심혈을 기울인 스마트TV와 우주선 모양의 애플 사옥 건설 등 여러 가지 혁신적 프로젝트들이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은 안타까움이 있다. 실제 잡스 없는 애플의 미래와 IT산업의 변화도 흥미로운 주제다.

잡스가 한국 IT산업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기존 모방 하드웨어 중심의 불안정한 한국 IT산업에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으며 포스트 잡스 시대에 창조적 IT를 건설하는 한국 IT의 숙제를 안겨주었다. 하드웨어에 전적으로 의지한 가운데 글로벌 IT업계의 리더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삼성, LG로 대표되는 한국 IT의 도전에 중요한 교사가 되었다. 실제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운영체제(OS)와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애플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스티브잡스와 같은 인물이 나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현실은 놀랍지 않은 사실이다. 1980년대를 근거로 놀라운 사고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이루어낸 성취와 비교하기에는 2011년의 10월은 분명 다른 점이 있다. 이 시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잡스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줄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정해진 코스의 안정적 직장에만 몰릴 수 밖에 없는 사실은 젊은이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도전하기에는 무척 위험한 한국이기에 젊은이들이 두려워하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최근 한국 사회의 위계질서의 붕괴 위험을 지적하는 고언이 쏟아지고 있는 요즈음이다.  서민들 가운데 흘러나오는 이분법은 보수와 진보의 논쟁도 아니며 반북, 종북의 논쟁도 아니다. 안타깝게도 "원래 부자"와 "원래 가난한 자"의 분류이다.  회장의 아들은 회장이 되고, 없는 집의 딸이 취직하기는 더 어려운 시대다. 취업자 2명 중 1명꼴로 비정규직이고, 세 집 중 한 곳이 전,월세 가구로 국민 중 3분의 1 이, (물론 이들 중 전략적 전세입자도 일부 있겠지만) '없는 자'이다. 사회의 계층간 이동이 막혀가고 있는 사회는 최근 60년간 한국이 이루어낸 성취가 지속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가 될 수 있다. 최근의 민심을 진심으로 읽어내는 리더가 필요한, 절박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