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유경수 홍정규 이지헌 기자 = 금융권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가 보유한 관계사 전반으로 '돈줄 죄기'를 확대함에 따라 '유병언 그룹'의 앞날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채권은행들이 대출금 만기 유예를 거절하고 본격적인 채권회수 절차에 돌입하면 재정 여건이 건실한 회사라 할지라도 자금경색을 버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유 전 회장 관계사에 대한 세무당국과 금융권의 자금 압박이 선량한 피해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를 감안해 금융당국은 면밀한 모니터링에 들어갔다.
◇국세청 담보압류에 은행권 '옥죄기' 시작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최근 유 전 회장 관계사인 청해진해운과 청해지, 아해(현 정석케미칼) 등 3개사가 대출금에 대한 기한이익을 상실했다고 처리했다.
최근 국세청이 이들 회사가 보유한 은행대출 담보물을 압류했다고 은행 측에 통지했기 때문이다.
은행여신거래기본약관상 담보재산에 압류명령이 떨어지게 되면 기업은 기한 이익을 상실하고 만기 전이라도 대출금을 모두 갚아야 할 의무가 생긴다. 이런 사실은 은행 간 공유돼 정상적인 금융거래도 제한된다.
이들 3개사가 산업은행에 당장 갚아야 할 대출잔액은 총 591억원에 달한다.
금융권에서는 이런 돈줄 죄기가 청해지와 아해를 시작으로 유 전 회장 관계사 전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무당국이 유 전 회장 관계사에 대한 재산을 추가로 압류할 경우 이에 근거한 대출금 역시 곧바로 회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세청은 최근 유 전 회장 관계사인 문진미디어 소유 부동산 18곳과 다판다 소유 부동산 10곳 등을 추가로 압류한 바 있다. 모두 기업은행[024110], 우리은행 등에 담보로 제공된 부동산이다.
기한이익이 상실되지 않더라도 은행 판단에 따라 만기 연장을 거부하거나 신용도 하락을 이유로 금리를 올릴 수 있다.
세월호 선사 청해진 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무그룹 회장이 은신했던 전남 순천의 한 폐식당에서 27일 오후 검찰 수사관들이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
◇대출회수→연체→법정관리→그룹 구조조정 수순될 듯
은행들은 오는 7월까지 유병언 관계사의 은행권 여신 2천800억원 가운데 900억원의 만기가 돌아온다고 금융당국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금 연체에 직면한 핵심 관계사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그룹 전체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기한이익을 잃게 되는 관계사들은 결국 기업회생절차를 법원에 신청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법원이 대주주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으면서 지배구조가 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전 회장 일가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룹이 해체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유 전 회장 관계사들은 아이원아이홀딩스, 천해지, 청해진해운을 중심으로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세무당국의 재산압류 조치를 발단으로 한 금융권의 채권회수 움직임이 비교적 건실한 관계사까지 위기로 몰아넣어 직원이나 하도급업체를 선량한 피해자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작년말 기준 결산보고서를 보면 천해지는 자산 1천780억원, 부채 976억원, 영업이익 54억원 규모의 비교적 양호한 재무상태를 가진 기업이다. 아해 역시 자산 500억원, 부채 320억원, 영업이익 52억원 수준의 업체로 재무제표상 별문제가 없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만기가 돌아왔다고 대출을 계속 연장해 주는 것은 국민정서상 맞지 않을 수 있다"며 "그렇다고 멀쩡한 회사의 여신을 바로 회수하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병언 관계사 가운데 우량한 기업이나 직원, 하도급업체 등의 피해 가능성을 지켜보지 않겠다는 뜻도 강조했다.
세무당국의 재산압류 조치와 그에 따른 금융권의 채권 회수 착수가 도주 중인 유 전 회장을 압박하기 위한 일련의 수단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유 재산 대부분에 이미 은행 담보권이 설정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국세청이 압류를 진행한 점을 고려하면 당국이 금융권을 동원해 유 전 회장을 압박하려는 계산을 미리 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