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시간) 뚜껑이 열린 미국의 2016 회계연도 예산안은 소득불균형 해소를 통해 중산층을 살린다는 '오바마노믹스'를 고스란히 구현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과 고소득층에서 돈을 거둬 사회 인프라와 교육·복지 확대에 과감히 쓰겠다는 게 그 핵심이다.
'시퀘스터'(자동 예산삭감)에 따라 정해진 예산 상한선을 보란 듯이 740억 달러나 초과했다.
정부 재정지출을 줄이고 '성장'을 촉진하는 데 초점을 둔 공화당의 정책 방향과는 배치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예산안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을 겨냥한 '백화점식 정책'을 쏟아내 '대선용'이라는 의구심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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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을 동시 장악한 공화당이 집요한 발목 잡기에 나설 가능성이 커 '오바마표 예산'이 어느 정도 살아남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톰
프라이스 하원 예산위원장과 마이크 엔지 상원 예산위원장은 이번 예산안에 대해 "오바마의 희망사항"이라고 일갈했다.
◇글로벌기업에 '세금폭탄'…자본소득 올려 '부자증세'
오바마 행정부는 앞으로 10년간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으로 2조1천억 달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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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제너럴 일렉트릭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무대에 활약한 기업들의 국외소득에 19%의 새로운 최저한세(minimum
tax)를 부과하는 것이다. 또 기업들이 이미 외국에서 벌어들여 보유 중인 2조1천억 달러에 대해서도 일회성의 14%의 세금을
매기기로 했다.
공화당으로서는 이 같은 '기업증세'에 극력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오바마 행정부가 '송금세'를 도입하겠다고 했을 때도 공화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다만, 기업들의 법인세를 35%에서 28%로 인하하는 방안은 공화당도 수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또 하나의 재원 마련 방법은 '부자증세'이다. 자본소득세 및 배당이익 최고세율을 현행 23.8%에서 28%까지 올리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인프라 건설에 쏟아붓기…'백화점식' 중산층 예산
이 같은 증세를 통해 확보한 재원은 중산층 지원 예산에 투입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향후 6년간 4천780억 달러를 인프라 건설에 투입하는 것이다.
글로벌 IT(정보기술)업체와 제약기업들이 국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도로, 철도, 항만을 비롯한 국내 인프라 건설 등에 주로 투자하는 모양새여서 공화당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겨냥한 다양한 정책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중산층 가정의 최대 관심사인 '아이 돌봄' 지원을 확대한다는 게 첫머리로 올랐다. 2025년까지 4세 미만의 아동들이 '프리스쿨(유아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7억5천만 달러를 쏟아 붓는다는 구상이다.
또 5세 미만의 아동을 둔 자녀·피부양가족 세액공제(Child and Dependent Care Tax Credit)를 세배 이상 확대할 방침이다. 배우자가 일하는 경우 200달러를 추가로 세액공제를 해주기로 했다.
앞으로 10년간 600억 달러를 들여 2년제 대학 등록금을 무료로 만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사회보장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동성커플이 배우자 혜택을 받도록 10년간 140억 달러를 투입할 방침이다.
100만 명에 달하는 퇴직 근로자들이 적어도 3년간 500시간 일을 할 수 있도록 일종의 401k(미국의 확정기여형 기업연금제도)를 적용하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2억 달러에 달하는 기술훈련자금도 책정됐다. 주택 및 도시개발부는 올해보다 17.8% 증가한 410억 달러의 재원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주택 재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펜타곤 '조직예산' 지키고 '전쟁예산' 깎아
국방분야 예산안은 시퀘스터가 정한 상한선을 크게 넘겼지만, 이른바 '전쟁예산'은 오히려 크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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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운영과 인사, 조달, 보수·유지, 연구·개발에 쓰이는 기본예산을 올해보다 380억 달러가 많은 4천960억 달러로 책정한 반면,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대테러 작전 등 대외 전쟁수행에 쓰이는 '해외비상작전'(OCO) 예산은 올해보다 21%(130억 달러)
감축된 510억 달러로 잡힌 것이다.
펜타곤이 기본예산의 삭감을 피하려고 OCO 예산을 의도적으로 줄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봉급, 전역지원, 복지혜택과 같은 개인적 군사지출을 둘러싸고 의회 내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다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는 88억 달러가 새로 책정됐다.
새
로운 무기구입 예산도 눈에 띈다. 차세대 전투기인 F-35를 57대 구입하는 비용으로 106억 달러가 책정됐다. U-2
고공정찰기와 헬리콥터 등의 구입이 크게 늘어나고 노후화된 조지 워싱턴 항공모함에 다시 연료 주입하는 비용으로 수억 달러가
책정됐다.
◇'개인 맞춤형' 의학 연구에 대폭 투입
개인 맞춤형 의학으로도 불리는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에 2억1천만 달러를 투입한 것도 주목된다. 정밀의학은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가진
게놈(genome)을 해독해 질병이 생길 경우 맞춤형 치료 또는 치료제를 제공하는 개념이다.
이 예산은 주로 개인 맞춤형 치료를 위해 100만 개 이상의 유전자 샘플을 연구용으로 수집하는 데 쓰일 전망이다.
처방 오피오이드(아편 비슷한 작용을 하는 합성 진통마취제)와 헤로인 퇴치에도 1억 달러를 투입할 방침이다.
소니 픽처스에 대한 해킹사건의 여파로 내년 예산안에 사이버 안보 항목으로 140억 달러가 책정됐다.
◇우리나라 유치한 기후변화펀드에 5억 달러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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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라가 2012년 인천 송도에 유치한 녹색기후기금(GCF)에 5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는 당초 약속한
30억 달러보다는 낮은 것이지만 미국의 이번 출자가 국제사회의 지원 움직임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환경청의 가스온실 규제의 최저 기준을 넘어선 주(州)들에게 배급되는 청정에너지 인센티브 펀드로 40억 달러가 책정됐다.
오바마 행정부는 앞으로 10년간 핵무기를 유지·관리하고 관련시설을 재건하는데 향후 10년간 3천480억 달러를 쓰기로 했다.
비확산 전문가들은 당초 '핵없는 세상 구현'을 기치로 내걸고 핵무기 감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던 오바마 행정부의 약속이 '공약'(空約)이 됐다고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