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EU 철강 장벽에 1위 수출시장 비상, 정부 수입쿼터 확보 위해 브뤼셀 급파

정휘 기자
EU 철강 장벽에 1위 수출시장 비상, 정부 수입쿼터 확보 위해 브뤼셀 급파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내달부터 무관세 수입쿼터를 절반 수준으로 축소하고 초과 물량에 대한 관세를 50%로 인상함에 따라 우리 정부가 수출 피해 최소화를 위한 고강도 통상 대응에 착수했다. 연간 44억 8천만 달러 규모에 달하는 한국의 최대 철강 수출 시장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통상교섭본부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의회를 상대로 쿼터 배분 우대를 강력히 요청했다. 정부는 내달 1일 시행 전까지 모든 협상 채널을 가동해 우리 기업의 시장 접근권을 최대한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유럽연합의 철강 수입 규제 강화 조치로 인한 국내 기업의 타격을 막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총력 대응 체제를 가동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1일부터 2일까지 벨기에 브뤼셀에서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경제안보 집행위원과 유럽의회 주요 의원들을 잇달아 만나 한국산 철강에 대한 우호적 처우를 촉구했다. 이번 방문은 지난달 11일 이후 불과 3주 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규제 시행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정부가 느끼는 위기감이 극도로 고조되었음을 시사한다.

유럽연합이 예고한 이번 조치는 한국 철강 업계에 유례없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EU는 무관세 수입쿼터(TRQ) 물량을 기존 3,500만 톤에서 1,830만 톤으로 대폭 감축하고, 이를 초과하여 수입되는 물량에 부과하던 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두 배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사실상 한국산 철강의 가격 경쟁력을 무력화하여 유럽 시장 진입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적 조치로 풀이된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대(對) EU 철강 수출액은 44억 8천만 달러로 전체 철강 수출의 13.5%를 차지하며 단일 시장 기준 1위에 올랐다. 이는 전통적인 최대 수출국이었던 미국의 43억 5천만 달러를 넘어서는 수치로, EU 시장의 규제 장벽이 높아질 경우 국내 철강 산업 전체의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정부가 브뤼셀 현지에서 국가별 쿼터 배분 과정의 공정성과 한국에 대한 특별 고려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 본부장은 면담 과정에서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을 기반으로 구축된 양측의 장기적 신뢰 관계를 부각하며 규제 완화를 압박했다. 그는 규범에 기반한 다자무역체제를 옹호해 온 EU가 이번 조치를 강행할 경우 국제사회로부터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수입 제한이 단순히 한국 철강사의 피해에 그치지 않고 EU 역내 공급망 전반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철강 수입 규제는 EU 현지에 진출해 대규모 투자를 이어온 한국 자동차 및 가전 기업들의 생산 활동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유럽 내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수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왔으나, 원자재인 철강 수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제조 원가 상승과 생산성 저하가 불가피하다. 여 본부장은 이러한 연쇄적 부작용이 결국 EU 경제의 활력을 저해하고 역내 고용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임을 경고했다.

유럽연합 측은 한국 정부의 우려에 대해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을 내놓으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남은 기간 상호 수용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 측과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규제 시행 자체를 철회하거나 쿼터 물량을 대폭 수정할지 여부는 확답하지 않았다. 이러한 기계적 중립 태도는 한국 정부가 실무급 협상에서 더욱 정교하고 강력한 논리를 개발해야 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여 본부장은 현지 진출 철강업계와의 간담회를 통해 현장의 애로사항을 직접 청취하고 대체 시장 발굴 등 민관 합동 대응 전략을 점검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기업 관계자들은 규제 시행 전후의 시장 변동성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부 차원의 실시간 정보 공유와 외교적 지원을 강력히 요청했다. 이에 대해 여 본부장은 "7월 1일 시행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고위급과 실무급을 아우르는 전방위 협상을 통해 우리 기업의 쿼터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향후 모든 협상 채널을 가동해 한국산 철강의 EU 시장 접근성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사투를 벌일 계획이다. 이번 사태는 글로벌 통상 환경이 자국 우선주의로 빠르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핵심 과제로, 정부의 통상 협상력이 국내 기간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산업계는 정부가 확보할 최종 쿼터 물량과 세부 배분 방식에 따라 하반기 경영 전략을 전면 재수정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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