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조동일 기자] 일본 아베노믹스의 '2차 공습'으로 엔저 현상이 더 심해지면서 한국의 수출경쟁력이 크게 악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국내외에서 잇따라 나오는 등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 4일 '구로다 체제'의 일본은행이 구로다 총재 취임 이후 첫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2년 안에 물가 2% 상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중자금 공급량을 2년 안에 2배로 늘리겠다며 강력한 통화완화책을 내놓자 9일 달러 당 99엔까지 치솟아 100엔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으며, 2분기 내 110엔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까지도 나오고 있다.
엔화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시장에서는 엔화를 팔고 달러를 매입하기에 바쁜 모습이다.
통화완화에 따른 일본의 장기 금리 하락이 일본과 외국간 금리 차이를 키울 것이라는 분석도 엔화 매도세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도 금융완화 조치가 유도한 엔저 흐름에 당장 브레이크를 걸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날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각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엔저 기조에 대해 "과도한 엔 강세가 시정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밝혔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의회에서 엔저에 따른 원자재 가격 인상이 기업과 가계에 미칠 영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현재의 통화추세는 전반적으로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재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은 돌발적인 사안이 발생하지 않는 한 엔저 기조가 적어도 1개월 가량은 더 지속될 것으로 보면서 엔·달러 환율이 달러 당 100엔대를 넘길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2분기 달러당 103엔, 3분기 103엔, 4분기 105엔으로 오른다고 전망했고 바클레이즈는 2~3분기 103엔에 도달한다고 봤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0엔대에 진입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게 대체적인 기류인 셈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주 원 수석연구위원·조규림 선임연구원 연구팀은 '아베노믹스가 국내 산업별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에서 엔화 가치가 달러 당 100엔에 이르면 한국 총 수출이 3.4%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지난 5일 외환시장을 기준으로 엔·달러 환율이 상승할 때 총 수출과 산업별 수출의 감소 효과를 추정했다.
그 결과, 엔·달러 환율이 100엔이 되면 국내 총 수출은 3.4%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본과 경합도가 높은 철강산업은 4.8%, 석유화학은 4.1%, 기계는 3.4%씩 수출이 줄어든다.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역시 각각 3.2%, 2.5% 감소한다.
엔·달러가 달러 당 110엔까지 가면 더 심각했다.
이 경우, 한국의 전체 수출은 11.4% 줄어들 것으로 추정됐다. 업종별로는 철강은 16.2%, 석유화학은 14.0%, 기계는 11.7% 각각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IT는 10.8%, 자동차는 8.4%, 가전은 5.7%의 비율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지난달 '원고·엔저의 파장과 대책'이란 보고서에서 엔·달러 환율이 달러 당 100엔(원·달러는 달러 당 1,000원)에 달하면 수출증가율이 2.0%포인트 하락하리라 전망했다.
특히 기계산업의 수출감소율이 7.5%, 자동차가 6.4%에 이를 것으로 봤다. 연구소는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하는 수출기업의 비중도 현재 33.6%에서 68.8%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은 이달 4일 연차보고서에서 "최근의 가파른 엔화가치 하락이 지속하면 수익성 악화 및 대일 가격경쟁력 악화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반영하듯 코스피는 엔저와 북한의 동반 위협에 8일 연저점을 내줬다.
수출 기업들도 비상에 걸렸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엔저가 예상 이상으로 강한 흐름을 보이고 있고, 일본은행의 추가 양적완화도 예상되는 상황인 만큼 국내 수출기업의 실적은 당분간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외신들도 엔저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즈는 8일(현지시간) "일본은행의 양적완화에 따른 엔화 약세로 일본 주요 기업들과 경쟁하는 미국·독일 자동차업체와 한국 제조업체가 마진을 쥐어짜야 하는 압력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했다.
블룸버그는 9일 투자전문가를 인용해 일본 기업의 경쟁 상대인 한국과 대만 기업의 채산성 악화를 경고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주 원 수석연구위원은 "엔저에 대응해 당국은 적정금리 수준과 양적 완화 정책을 신중히 재검토해야 한다"며 "기업도 기술경쟁력 강화로 일본 제품과의 차별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