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자동차와 공작기계의 핵심 부품인 범용 반도체 공급망을 장악하기 위해 투자액 300억 엔 미만의 중소 규모 사업에도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경제산업성은 이달 중 관련 요건을 개정하여 자국 내 생산 능력을 30% 이상 확충하는 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며, 이를 통해 2040년 반도체 매출 40조 엔 달성을 정조준한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범용 반도체 생산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보조금 지급 요건을 대폭 완화하며 경제 안보의 외연을 확장한다. 기존에는 TSMC 구마모토 공장과 같은 대규모 첨단 공정에 지원이 집중되었으나, 앞으로는 투자액 300억 엔 미만의 중소 규모 설비 투자도 지원 대상에 포함한다. 이는 첨단 기술 확보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제조 산업의 뿌리가 되는 범용 제품군까지 자국 내 공급망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적 포석이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아날로그 반도체와 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MCU) 등 산업 전반에 쓰이는 필수 소자의 안정적 조달 체계 구축에 있다. 아날로그 반도체는 온도와 압력 등 외부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하며, MCU는 전자 기기의 제어를 담당하는 핵심 부품으로 분류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범용 반도체는 특정 용도에 최적화되어 설계되기 때문에 수급 차질 발생 시 대체품을 찾기가 극도로 어렵다.
일본 정부가 이처럼 범용 제품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과거 공급망 붕괴로 인한 산업계의 뼈아픈 타격 때문이다. 2021년 당시 반도체 부족 사태로 인해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한 일본 내 주요 제조사들은 공장 가동 중단과 생산량 감축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바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일본의 이번 결정이 첨단 공정에만 매몰되지 않고 산업 생태계 전반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려는 실용적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보조금을 수령하려는 기업은 엄격한 이행 조건과 의무 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해당 기업은 일본 내 생산 능력을 기존 대비 30% 이상 증설하거나, 해외에 있는 공정의 30% 이상을 일본 국내로 이전해야 하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또한 수급 위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일본 국내 시장에 물량을 우선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국가 안보적 성격을 명확히 했다.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보안 대책 역시 보조금 지급의 필수 검토 항목으로 지정되었다. 일본 정부는 보조금 지원을 통해 기업의 설비 투자를 유도하는 동시에 중요 기술이 해외로 무분별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철저히 차단할 방침이다. 이는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국가가 민간 기업의 보안 체계와 공급망 관리 시스템을 직접 점검하고 관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로이터 통신은 일본의 이러한 행보가 미국과 유럽이 추진 중인 '레거시 반도체' 공급망 강화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저가형 범용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서방 진구국들이 이에 대응하여 자국 내 제조 기반을 서둘러 재건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이번 조치를 통해 범용 반도체의 대외 의존도를 낮추고 제조 강국의 위상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기업의 자생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다.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보조금 정치가 단기적인 공급망 안정에는 기여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자유무역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정부 지원금에 의존한 설비 증설이 향후 시장 과잉 공급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본의 이번 전략은 첨단 기술과 기초 제조 역량을 동시에 거머쥐려는 양면 작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일본 정부는 이번 요건 개정을 발판 삼아 2040년까지 자국 내 반도체 관련 매출을 40조 엔 규모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현실화할 계획이다. 향후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은 초미세 공정을 넘어 범용 제품의 안정적 확보를 둘러싼 자원 전쟁의 양상으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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