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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탄소국경세 도입안 발표 임박…정부·기업, 대책 마련 나서

14일 법안 공개...전기·철강 등 고탄소 수입품에 배출권 비용 부과

고탄소 수입품에 비용을 부과하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안 발표가 임박했다.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제조업 집약적인 산업 구조상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우리나라 수출 기업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우리 정부는 이미 자체적으로 탄소배출 감축 제도를 시행 중이라는 점을 근거로 EU 측에 제도 적용 면제를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1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오는 14일 2030년 유럽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55% 감축하기 위한 입법 패키지 '핏 포 55'(Fit for 55)를 발표한다.

EU는 이때 CBAM 법안 내용도 함께 공개할 예정이다. CBAM은 EU 역내로 수입되는 제품 중 자국 제품보다 탄소배출이 많은 제품에 대해 비용을 부과하는 조치다.

지난달 초 공개된 초안에 따르면, EU는 일차적으로 2023년부터 전기·시멘트·비료·철강·알루미늄 등 탄소배출이 많은 품목에 CBAM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후 3년의 과도 기간을 거쳐 2026년 전면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비용 부과 방식은 기업이 탄소배출권을 의무적으로 구매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CBAM 적용 품목 수입자는 사전에 연간 수입량에 해당하는 양의 'CBAM 인증서(certificate)'를 구매해야 한다.

인증서 1개는 탄소 1t에 해당하며, 품목별 탄소량은 생산 과정에 발생하는 직간접적 배출을 모두 고려해 결정한다.

예컨대 EU 역내에서 제품 1개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탄소가 10t인데 A국가에서 수입해온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12t일 경우, 수입자는 2t만큼의 CBAM 증명서를 구매해야 해 추가 비용이 들게 된다.

미국 정부가 국내산 열연강판에 최고 61%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해 한국산 철강재의 대(對) 미국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 상무부(DOC)는 5일(현지시간)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업체들이 수출하는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상계 관세율을 최종 판정했다. 포스코는 반덤핑 관세율 3.89%, 상계 관세율 57.04% 등 관세율이 총 60.93%에 달하며, 현대제철에는 반덤핑 9.49%, 상계 3.89% 등 총 13.38%의 관세율이 결정됐다. 포스

사실상 관세 부과 효과가 있는 것으로, 수출기업 입장에서는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약해진다.

인증서 가격은 EU의 배출권 시장 가격과 연동돼 매주 EU 배출권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판매된다.

CBAM 대상 수입품이 원산지 국가에서 배출권 거래제 등을 통해 탄소 배출에 대한 가격을 이미 지불한 경우에는 수입자가 해당 가격에 상응하는 금액의 감면을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현재의 탄소 배출량을 유지한 채 CBAM이 시행되면 철강, 석유화학 등을 중심으로 수출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우리나라 추가 비용 발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최근 보고서에서 EU가 이산화탄소 1t당 30유로를 전 분야에 과세할 경우, 우리나라는 연간 10억6천100만달러(약 1조2천200억원) 규모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관세율로 따지면 1.9%의 추가 관세가 부과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구원은 EU가 ▲ 기계 및 장비류 ▲ 화학 및 비금속 ▲ 금속 ▲ 석탄 채굴 및 원유·천연가스 추출 등 탄소 배출 관련 주요 4개 분야에만 한정해 과세하는 경우도 가정해 분석했다.

그 결과 관세율 추정치는 금속(2.7%), 화학 및 비금속(1.3%), 기계 및 장비류(0.8%) 순으로 높았다.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EU가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면서 이산화탄소를 다량으로 순수입하는 분야(기계 및 장비류 등)와 수입에 내재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아 배출 집약도가 높은 분야(금속 등)에 종사하는 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역 의존도가 높고 이산화탄소가 다량 배출되는 제조업 위주의 교역 구조를 가진 우리나라는 이러한 주요국의 규제 동향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며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이 사안과 관련해 우리 측 입장을 EU에 꾸준히 전달해왔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지난 6일 한국을 찾은 프란스 티머만스 EU 그린딜 담당 수석부집행위원장을 만나 이중규제 우려가 없도록 우리나라와 같은 배출권 거래제 시행 국가를 CBAM 적용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CBAM이 초안대로 강력하게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수입품을 동종 국산품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내국민대우 원칙에 어긋날 소지가 있고, 사실상 보호무역 조치로 쓰일 수 있다는 미국 등 주요국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EU 내에서도 독일 등 수출 중심인 회원국은 상대국의 보복 조치를 우려해 CBAM에 소극적인 상황이다. 이 때문에 오는 14일 공개되는 법안은 당초 계획보다 규제 수준이 완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무역협회 브뤼셀지부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보복 조치 가능성과 중국·호주 등 교역상대국의 무역장벽 우려, EU 인접 국가의 WTO 제소 가능성 등으로 인해 당초 예상한 규제 수준이 후퇴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EU와 동등한 수준으로 배출가스를 규제하는 국가를 CBAM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국가별로 별도의 양자 협정을 통해 CBAM을 적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전했다.

◆ 산업부 "대응방안 마련할 것"

산업부는 최근 '철강산업 글로벌 탄소국경조정 대응 전략 및 경쟁력 강화방안'을 주제로 연구 용역을 공고했다.

산업부는 연구 과업으로 "EU가 발표 예정인 탄소국경조정 법안 초안을 중점적으로 분석해 구체적 제도 설계 내용과 우리 철강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 국제사회에서 우리 입장 및 철강업계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정부는 오는 9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철강위원회, 글로벌 철강 포럼 장관급 회의, 10월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채널과 EU·미국 등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등 양자채널에 대비해 우리 입장을 수립하는 데 연구 용역 결과를 활용할 방침이다.

철강업계도 탄소국경조정제도 대응 뿐만아니라 궁극적으로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실천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산업은 국가 배출량의 17%를 차지하는 온스 가스 다배출 업종이지만 온실가스 감축이 쉽지만은 않은 산업"이라며 "에너지 효율 향상부터 저탄소 원료와 철스크랩(고철) 사용 확대,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등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