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공지능(AI) 반도체 공급망의 한 축을 지탱하는 정밀 소재, ‘T-글라스(T-glass)’가 희소 자원으로 떠올랐다.
이 초미세 유리섬유 직물은 칩 패키징 공정에서 필수적으로 쓰이지만, 전 세계 공급의 대부분이 일본의 섬유업체 니토보(Nittobo)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이 생산하는 머리카락보다 얇은 미세 유리 섬유 시트인 'T-글라스(T-glass)'의 공급 부족이 엔비디아와 애플 같은 글로벌 IT 거물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8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다이와 증권의 히라카와 노리츠구 애널리스트는 "T-글라스는 제조 공정이 매우 까다로워 경쟁사들이 단기간에 닛토보를 따라잡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AI 붐이 불러온 'T-글라스' 대란… 소비자가 인상 압박
AI 기업들이 메모리 칩과 부품을 싹쓸이하면서 소재 공급망에 과부하가 걸렸다.
엔비디아처럼 자금력이 막강한 기업들이 부품 우선권을 가져감에 따라, 상대적으로 우선순위가 밀린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 가전제품 분야에서 부품 부족 현상이 심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소재 가격도 요동치고 있다.
반도체 패키징 부품사인 레조낙(Resonac)이 특정 제품 가격을 30% 이상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닛토보 역시 올해 최소 25% 이상의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이러한 원가 상승은 결국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전자기기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 왜 'T-글라스'인가?… 끓는점 견디는 반도체의 방패
첨단 반도체 패키징에서 소재 선택은 정밀도의 핵심이다.
프로세서가 작동하며 물의 끓는점 수준까지 가열될 때, 칩 하단의 보강층 역할을 하는 T-글라스는 패키지가 뒤틀리거나 변형되지 않도록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미세한 변형조차 허용되지 않는 첨단 공정에서 T-글라스의 대체재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이처럼 반도체 생태계는 예상치 못한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조미료 MSG로 유명한 아지노모토(Ajinomoto)가 반도체 절연 필름(ABF)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나, 엔비디아의 고가 서버 랙 부품을 대만의 가구 부품 업체가 공급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 실크 짜던 기술로 빚은 '유리 직물'의 진입장벽
1923년 설립된 닛토보는 원래 면사와 실크를 뽑던 방적 회사였다.
이들은 유리 섬유를 실처럼 자아내 천처럼 짜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유리 섬유의 원리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특수 유리 배합 비율과 정교한 직조 방법은 오직 닛토보만이 보유한 '비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익성이 낮아 타 기업들이 투자를 꺼릴 때도 닛토보는 꾸준히 첨단 공법에 투자하며 독보적인 해자를 구축했다.
▲ 애플 매니저들이 일본으로 달려가는 이유
시장의 수요는 폭발적이지만 닛토보의 대응은 신중하다.
닛토보는 2028년까지 생산 능력을 3배로 늘릴 계획이지만, 본격적인 증설 물량은 올해 말에야 나올 예정이다.
급해진 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은 중간 부품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일본으로 매니저들을 급파해 닛토보와 직접 협상에 나서고 있다.
닛토보 측은 "전자 및 반도체 업체들이 마침내 유리 직물을 핵심 소재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변화"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실제로 지난 회계연도에 닛토보는 약 1억 400만 달러라는 역대 최고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 일본 소재 기업의 신중론과 '공급 과잉'의 공포
일본 기업들은 반도체 상류 공정 소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나, 전통적으로 수요 예측에 보수적이다.
과거 고객사들의 낙관적인 전망만 믿고 증설했다가 시장이 꺾이면서 공급 과잉으로 고통받았던 트라우마 때문이다.
대만경제연구원의 스허팡치우 연구원은 “수요 전망을 과도하게 믿었다가 과잉 공급에 빠질 것을 우려하는 문화가 있다”고 분석했다
닛토보 역시 "AI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이 성장 속도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며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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