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증권사의 유동성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모든 증권사를 대상으로 '신(新)조정유동성비율' 규제를 전격 도입한다. 주식과 펀드 등 자산 가치에 위험도에 따른 최대 30%의 할인율을 적용하고 채무보증을 부채로 명시하는 이번 조치는 내년 1월부터 국내 49개 전 증권사에 일괄 적용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증권사의 실질적인 자금 동원 능력을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한 금융투자업규정 및 시행세칙 개정안을 예고했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위기 상황에서 현금화가 어려운 자산의 가치를 대폭 삭감하고, 장부상 드러나지 않던 우발채무를 부채에 산입하여 유동성 비율의 착시 현상을 제거하는 데 있다. 이는 지난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당시 증권사들이 서류상으로는 양호한 유동성 비율을 유지했음에도 실제로는 극심한 자금난을 겪으며 정부의 긴급 지원을 받았던 모순을 해결하려는 정책적 결단이다.
자산 가치 산정 시 자산의 가격 변동 위험도에 따라 차등적인 할인율인 '헤어컷'을 적용하여 유동성 자산의 질을 엄격히 평가한다. 국공채와 특수채, AAA등급 채권 등 안전자산에는 0%의 할인율을 적용하지만, AA등급은 7%, A등급 이하 채권은 10%의 가치를 깎아 계산한다. 주식과 외화증권, 일반 개방형 펀드 및 ETF에는 15%의 할인율이 부여되며, 구조가 복잡한 합성형 ETF의 경우 자산 가치의 30%를 제외하고 유동성을 산정한다.
유동부채 산정 방식 또한 실질적인 현금 유출 가능성을 중심으로 재편하여 증권사의 잠재적 부실 요인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그동안 장부 외 항목으로 분류되던 채무보증 등 우발채무를 차환 발행 증권이나 대출 약정 등으로 세분화하여 유동부채 잔액에 직접 가산하도록 명시했다. 담보로 제공된 자산은 예외 없이 유동자산에서 차감하며, 부채 산정 시에는 자금 유출률이 높은 항목일수록 부채 가중치를 높여 유동성 여력을 보수적으로 파악한다.
규제 적용 대상이 기존 대형사 중심에서 국내 49개 증권사 전체로 대폭 확대됨에 따라 업계 전반의 재무 건전성 기준이 상향 평준화될 전망이다. 기존에는 대형 종합금융투자사업자와 파생상품 발행사 등 23개사만이 유동성 규제 준수 의무를 가졌으나, 앞으로는 모든 증권사가 1개월 및 3개월 유동성 비율을 각각 10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이는 시장 위기 발생 시 상대적으로 기초 체력이 약한 중소형 증권사부터 무너지는 연쇄 도산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펀드 자산의 유동화 기간 산정 기준을 실질 환매 소요 기간과 잔존 만기로 구체화하여 자산 운용의 효율성보다 안정성에 무게를 둔다. 상장지수펀드와 같은 개방형 펀드는 실제 환매에 걸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삼고, 부동산 펀드 등 폐쇄형 펀드는 만기 시점을 기준으로 유동성을 평가하여 허수를 제거한다. 이러한 세부 지침은 증권사가 보유한 포트폴리오의 실질적인 현금화 속도를 반영함으로써 위기 대응의 신속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금융당국이 이처럼 강력한 규제 카드를 꺼낸 배경에는 현행 유동성 비율 산정 방식이 시장의 위기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자리하고 있다. 2022년 단기자금 시장 경색 당시 대다수 증권사는 100%가 넘는 유동성 비율을 기록했으나, 실제로는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부도 위기에 직면하는 한계 상황을 노출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증권사들의 위기 대응력이 높아져 유동성 리스크 발생 가능성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하며 규제 강화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규제 강화가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형 증권사들에게 과도한 재무적 부담으로 작용하여 투자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갑작스러운 자산 할인율 적용과 우발채무의 부채 산입은 중소 증권사의 유동성 비율을 급격히 하락시켜 단기적인 영업 위축이나 자본 확충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시장의 장기적 안정성과 건전한 시장 질서 확립이 우선이라는 정책적 판단이 업계의 단기적 고통보다 우위에 서 있는 형국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개정안에 대한 규정변경예고와 증권사 시스템 개발 기간을 거쳐 내년 1월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부동산 리스크 관리 강화를 위해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위험값 세분화와 투자 한도 신설 등 후속 조치도 병행하고 있다. 향후 종합금융투자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별도의 자본규제 도입까지 검토되고 있어, 국내 증권업계는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내실을 기하는 대대적인 구조적 변화의 시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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