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하청업체에 안전사고와 파업 손실 등 경영 위험을 전가하고 계약 서면을 늑장 발급한 국내 5대 택배 사업자에게 총 30억 7,8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를 비롯해 씨제이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 로젠 등 시장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업체들이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이번 조치는 대형 택배사들이 사업 규모를 확장하면서도 정작 하도급 거래의 기본인 공정 계약 체결 의무를 소홀히 한 관행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분석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영업점과 터미널 운영사 등 수급 사업자에게 부당한 특약을 설정하고 서면 계약서를 지연 발급한 5개 택배사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업체별 과징금 규모는 쿠팡 7억 5,900만 원, 한진 6억 9,600만 원, 롯데 6억 3,300만 원, 씨제이 6억 1,200만 원, 로젠 3억 7,800만 원 순으로 집계됐다. 이들 5개사는 국내 택배 시장의 약 90.5%를 점유하고 있는 지배적 사업자들로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한 책임이 무거운 위치에 있다.
조사 결과 이들 업체는 안전사고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을 영업점에 전적으로 떠넘기는 부당한 특약을 설정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택배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량 사고는 물론 고객의 개인 정보 분실이나 도난에 대한 책임까지 하청업체인 영업점이 지도록 강제했다. 심지어 택배기사들의 쟁의 행위로 발생한 손해배상 책임과 행정처분에 따른 변호사 비용까지 영업점의 몫으로 돌리는 등 원청의 위험을 하청에 전가했다.
일부 사업자는 영업점이 계약상 의무를 위반할 경우 소명 기회조차 주지 않고 즉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독소 조항을 운영했다. 이러한 구조적 압박은 결국 영업점이 배상 책임을 택배기사 개인에게 다시 전가하는 연쇄적인 불공정 행위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공정위는 부당특약 혐의에 대해서만 총 24억 7,800만 원의 과징금을 산정하여 부과하며 엄중한 법 집행 의지를 보였다.
하도급법상 의무인 계약 서면 발급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총 2,055건의 늑장 발급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롯데글로벌로지스의 경우 용역 수행이 시작된 후 최장 761일이 지나서야 계약서를 발급하는 등 법 위반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원사업자는 용역 시작 전 계약 내용을 기재한 서면을 발급해야 하지만 대다수 업체는 이를 지연 발급하거나 누락하며 수급 사업자의 법적 지위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공정위는 서면 발급 위반이 상대적으로 경미한 로젠을 제외한 4개사에 대해 총 6억 원의 추가 과징금을 부과했다. 쿠팡이 1억 9,200만 원으로 가장 많은 금액을 배정받았으며 롯데와 한진이 각각 1억 5,000만 원, 씨제이가 1억 800만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대형 물류사들이 법적 의무를 3~4년이라는 장기간 동안 방치했다는 점이 위법성 판단의 핵심 근거가 됐다.
이번 조사는 택배 종사자들의 과로사와 탈진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함에 따라 관계 부처가 합동 점검에 나서며 시작된 사안이다. 실제로 2023년과 2024년에 걸쳐 쿠팡 하청업체 및 영업점 소속 기사들이 뇌출혈로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며 현장의 불공정 관행에 대한 비판이 고조됐다. 노동계는 이러한 사고가 택배사의 무리한 경영 방식과 책임 전가 구조에서 기인한 구조적 문제라고 주장해 왔다.
택배 업계 일각에서는 물류 현장의 특수성과 급격한 물동량 증가에 따른 행정적 한계가 있었다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계약 서면의 경우 뒤늦게라도 발급을 완료하여 실질적인 피해를 최소화하려 노력했다는 점을 참작해야 한다는 항변도 제기된다. 그러나 공정위는 사업 규모 확장에 걸맞은 공정 거래 질서 확립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자 법적 의무라는 원칙을 고수하며 제재를 확정했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를 통해 택배 시장의 고질적인 불공정 관행이 개선되고 종사자들의 업무 부담이 실질적으로 경감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동명 공정위 신산업하도급조사과장은 "영업점에 부담이 전가되면 영업점은 그 배상 책임의 전부나 일부를 택배 기사에게 부담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택배 사업자들이 단기간에 규모를 키운 것과 달리 공정한 계약 체결 관행 정착에는 소홀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향후 90일 이내에 문제가 된 부당 특약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도록 명령하며 사후 관리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배송 서비스 분야에서 법 위반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점검을 이어갈 계획이다. 물류 대기업들이 법치와 효율성을 바탕으로 상생의 시장 질서를 구축할 수 있을지 향후 행보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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