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SK하이닉스 HBM4 주도권 굳히기 나섰다… 한미반도체에 442억 규모 핵심 장비 발주

정휘 기자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향 HBM4(6세대) 공급망 선점을 위해 한미반도체와 대규모 장비 계약을 체결하며 생산 능력 확충에 속도를 낸다. 이번 발주는 청주 M15X 생산기지의 본격 가동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차세대 AI 가속기 시장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442억 원 규모의 이번 계약은 고성능 반도체 제조의 핵심인 TC 본더 장비를 확보하여 경쟁사와의 격차를 벌리는 데 목적이 있다.

SK하이닉스가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독주 체제를 굳히기 위해 핵심 공정 장비 확보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다. 한미반도체는 8일 공시를 통해 SK하이닉스로부터 442억 원 규모의 HBM4 제조용 ‘TC 본더 4.5 그리핀(TC BONDER 4.5 GRIFFIN)’ 장비를 수주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은 이날부터 오는 9월 2일까지 이행되며, 장비의 단가를 고려할 때 약 15대 안팎의 물량이 공급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폭증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 설비 투자로 평가받는다.

이번에 도입되는 장비는 SK하이닉스의 차세대 생산 기지인 청주 M15X 팹(Fab)에 배치되어 양산 효율을 극대화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HBM 등 차세대 D램 캐파 확보를 위해 총 20조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여 M15X를 건설 중이며, 이미 지난 2월부터 웨이퍼 투입을 시작한 상태다. M15X는 당초 계획보다 일정을 앞당겨 클린룸을 순차적으로 오픈하며 본격적인 양산 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도화된 장비 반입은 수율 안정화와 생산량 증대로 직결되는 핵심 요소다.

TC 본더 4.5 그리핀은 한미반도체가 기존 모델을 업그레이드하여 SK하이닉스의 공정 특성에 최적화한 최신형 장비다. 해당 장비는 HBM 제조 공정에서 칩을 적층하고 부착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HBM4 생산성 증대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으로 꼽힌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9월부터 이미 HBM4 양산 체제에 돌입하며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번 장비 추가 도입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인 ‘베라 루빈’에 탑재될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HBM 공급 확대 요구는 갈수록 거세지는 양상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3사 모두 인증이 완료됐고 현재 양산 중이다"라고 밝히며 시장의 수요가 여전히 공급을 상회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황 CEO는 지난 컴퓨텍스 행사에서 SK하이닉스 부스를 방문해 HBM 제품에 직접 서명하며 생산 확대를 독려하는 등 양사 간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과시하기도 했다.

글로벌 시장의 공급망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설비 투자의 효율성과 적시성은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척도가 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검증된 한미반도체의 장비를 활용해 공정의 안정성을 꾀하는 동시에, M15X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후발 주자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고부가가치 메모리 시장에서 수익성을 극대화하려는 보수적이면서도 치밀한 경영 전략의 일환이다. 시장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선점 효과를 누리려는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특정 장비 업체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반도체 업황의 변동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고 본격적인 양산 경쟁에 뛰어들면서, 과거와 같은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기술적 난도가 높아지는 HBM4 공정에서 예상치 못한 수율 저하가 발생할 경우, 대규모 투자가 오히려 재무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계적 중립 관점에서 볼 때 공급망 다변화는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향후 반도체 시장은 미세 공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패키징 기술력 싸움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장비 발주를 시작으로 M15X 내 장비 반입을 가속화하며 HBM4 시장의 표준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AI 인프라 확충이 초기 단계에 불과한 만큼, 고성능 메모리에 대한 수요는 당분간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법치와 시장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영 기조 아래, SK하이닉스의 공격적인 설비 투자가 실질적인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K하이닉스#HBM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