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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지방선거, 이변과 변화들

6·2지방선거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여권의 참패로 끝났다. 한나라당은 천안함 침몰, 여론조사에서의 우세와 같은 유리한 상황을 뒤에 업고도 패함에 따라 향후 정국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존 정당이 독식했던 지역의 표심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이번 선거를 특징지을 수 있는 주요 지점들을 짚어본다. 

◆ 한나라당 대세론, 오히려 견제 심리 자극

당초 이번 선거는 여권의 ‘국정 안정론’과 야권의 ‘정권 심판론’의 구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4대강 사업, 세종시 이전, 무상급식 논란 등이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었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다른 모든 이슈들이 묻히면서, 선거 구도를 바꾸어 놓았다. 기존의 안정과 심판의 대결구도는 무너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나타나면서 이러한 분석은 더 강화됐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한나라당이 참패한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권의 압승에 대한 국민의 견제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가 한나라당의 전반적 우세로 나타나면서 오히려 야당 지지층을 결집시켰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대세론이 오히려 정권 심판의 욕구를 타오르게 한 셈이다.

◆ 북풍, 역북풍에 밀려

이번 ‘6·2지방선거’의 최대 이슈는 ‘천안함 침몰 사건’이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북풍’이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역북풍이 불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정부의 강경대응이 역북풍을 불러온 주요인으로 꼽힌다. 대북심리전 재개 검토와 자위권 발동 등으로 전쟁 위기가 고조되면서 전쟁에 민감한 20대의 표심을 잃었다는 분석이다. 또한 주가 폭락과 환율 급등과 같이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지면서 30, 40대 직장인들도 등을 돌렸다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은 북풍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경솔하게 행동함으로써 역풍을 맞았다. 한나라당 이윤성 의원은 “다행히 천안함이 인천 앞바다에서 일어났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또한 일부 의원은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4대강을 밀어붙이겠다”고 공언하는 등 자만심을 내비쳐 국민들의 견제심리를 자극했다.

◆ 보수 진영의 분열

여당의 예상치 못한 패배에는 외부적 요인 만이 아니라 내부의 분열도 작용했다. 보수 진영은 이명박 대통령의 50%를 넘나드는 지지율, 북풍에 대한 기대 등으로 선거에서의 승리를 과신했고, 후보들이 난립했다.

반면 야권은 위기감이 단일화로 연결되면서 승리의 주요 요인이 됐다. 민주노동당은 단일화의 성과로 수도권에서 최초로 기초단체장을 배출했으며, 한나라당의 텃밭인 경남에서는 단일화후보로 나선 김두관 후보가 당선됐다.

한나라당의 분열에는 고질적인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간 계파갈등이 작용했다. 박 전 대표는 당 지도부의 선거지원 요청도 거부하고, 선거기간 내내 자신의 대구 달성지역구에서 달성군수 선거지원에만 집중했다. 수도권에서의 한나라당의 완패에는 박 전 대표 지지자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경남도지사 선거에 친박 김태호 지사가 불출마하고, 친이계의 핵심인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낙하산 공천으로 내려온 것에 대한 불만도 보수 지지자들의 표 결집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도 보수성향 후보들은 단일화에 실패했고, 단일화를 이룬 진보성향 후보들은 서울·경기·강원 등 주요 지역에서 당선됐다.

◆ 친노 세력의 복귀

친노 인사들의 약진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좌희정, 우광재’로 불렸던 안희정 충남도지사 당선자와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 ‘리틀 노무현’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는 힘겨울 것이라는 예측을 뒤집고 당선됐다. 특히 강원과 경남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의 텃밭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당선은 의미가 더 크다.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와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 김정길 부산시장 후보도 비록 고배를 마셨지만 접전을 펼쳤다.

여권은 노풍을 우려해 ‘전 정권 심판론’을 내세웠지만, 친노 후보들은 “지난 대선과 총선 두 번의 심판으로 참여정부에 대한 심판은 끝났다”고 반발했고, 이러한 논리가 표심으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명숙 후보는 검찰 수사로 수세에 몰렸지만 예상을 뒤엎고 오세훈 당선자와 아슬아슬한 승부를 펼쳐 도덕성 논란을 잠재웠다.

◆ 여당 텃밭도 등 돌려

한나라당은 텃밭이라고 자부하던 지역에서도 충격적인 패배를 안았다. 강원도지사는 이광재 민주당 후보에게, 경남도지사는 야권단일화 후보인 김두관 무소속 후보에게 내줬다. 민주당(국민회의, 열린우리당 시절 포함)이 두 지역에서 도지사를 배출한 것은 지방선거 역사상 처음이다.

김맹곤 김해시장 후보는 16년간의 한나라당 아성을 깨고 당선됐다. 김 후보는 경남의 유일한 민주당 소속 시장이다.

‘세종시 표심’이 떠난 충청권도 한나라당에 등을 돌렸다. 세종시 원안 사수가 핵심 공약이었던 대전과 충남·북에서  모두 야당이 승리했다. 지난 선거에서는 이들 지역에서 한나라당이 모두 승리했었다.

부산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최초로 40% 이상을 득표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민주당 김정길 후보는 비록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한나라당 허남식 현 시장을 상대로 44.5%의 지지율로 선전했다.

한나라당도 민주당 텃밭인 전남·북 도지사 선거에서 정운천(18.2%)·김대식(13.4%) 후보가 1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지역정치가 과거에 비해 약화되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 젊은 층의 활발한 투표 의지

높은 투표율도 눈에 띄는 현상이었다.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54.5%로 2006년(51.6%)보다 3%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1995년 첫 번째 지방선거 이후 15년 만에 최고이다. 투표율이 낮았던 젊은 층이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면서 투표율 상승에 일조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젊은층의 투표율이 상승한 요인으로 ‘트위터’와 같은 네트워크 문화를 꼽고 있다. 젊은 층이 관심을 보이는 연예인, 예술인들이 트위터에 젊은 층의 투표를 부탁하는 글을 잇달아 올렸기 때문이다. 또한 선거 막판 터진 방송인 김제동씨의 하차 사건도 젊은 층의 투표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 무소속 강세, 낙하산 공천은 그만

지금까지 특정 정당의 텃밭으로 여겨져 온 지역에서 무소속 후보가 강세를 보인 점도 특기할만하다.

야권단일화로 출마한 김두관 경남도지사 후보는 이달곤 후보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이 후보가 이명박 정부의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인사라는 점에서 볼 때, 이러한 승리는 더욱 놀랍다. 제주도지사 선거에서는 아예 무소속 후보가 1, 2위를 차지했다.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에서도 무소속은 돌풍을 일으켰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영남권에서는 18명이, 호남권에서는 9명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전문가들은 무소속 돌풍이 분 지역이 대부분 공천 잡음이 있었던 곳임을 지적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낙하산 인사로는 텃밭 지역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