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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체와 개인회생 신청 급증, 어떻게 봐야하나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가계의 채무불이행 지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과 가계여신 부실채권비율이 동시에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1일이상 원금 연체 기준으로 지난해말 국내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0.81%에 달했는데, 이는 연말 기준으로 200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74%로, 불과 3년 사이에 2.2배나 높아졌다. 신용대출 등의 연체율은 이보다도 높아 지난해말 0.94%에 달했다.
 
총여신 중 고정이하여신으로 측정되는 부실채권비율 역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 전체 가계여신의 부실채권비율은 0.69%,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채권비율은 0.65%, 신용카드채권의 부실채권비율은 1.48%에 달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채권비율은 3년 사이에 1.7배나 높아졌다.
 
은행에서 돈을 빌린 가계 중 제대로 돈을 갚지 못하는 가계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가운데, 채권 회수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은행들이 부실채권으로 분류하는 대출금의 비중 역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말 기준 가계의 채무불이행 지표는 최근 수년 들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악화된 상황이다.
 
◆ 채무불이행 초기 단계서 채무재조정 신청하는 경우 늘어

여기에서 동시에 살펴봐야 할 것은 최근의 채무재조정 지표 움직임이다.

개인 과중 채무자를 구제하기 위해 현재 시행되고 있는 주요 제도로는 신용회복위원회에 의해 운영되는 프리워크아웃과 개인워크아웃, 법원에 의해 관리되는 개인회생과 개인파산 등이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의해 운영되는 제도들은 금융회사간 자율 협약에 근거함으로써 법적 구속력이 없는 사적 채무 재조정인 반면, 법원에 의해 관리되는 제도들은 통합 도산법에 근거한 법적 구속력을 지닌공적 절차라는 차이점이 있다.

이들 제도 중 개인파산을 제외한 나머지 제도들은 채무재조정을 통해 채무자가 채무를 갚아나가도록 하는 재건형 제도들이지만, 개인파산은 채무자의 자산을 처분하여 채권자의 권리 순서에 따라 배분하는 청산형 제도다.
 
먼저 눈길을 끄는 대목은 채무불이행 초기 단계에서 채무재조정을 신청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재조정을 신청한 사람들 중 연체 기간 90일 미만인 경우에만 신청 가능한 프리워크아웃 신청자들의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전체 신용회복 신청자 중 프리워크아웃 신청자 비중은 2009년과 2010년에는 8%대에 불과했지만, 2011년에 15.9%로 높아진 데 이어, 지난해 4분기에는 24.6%까지 높아졌다. 불과 2년 만에 2.8배나 높아진 것이다.
 
이는 채무자에 대한 제도별 지원 내용을 감안하면 다소 의외의 현상이다. 채무재조정 측면에서 연체 기간이 3개월 이상인 경우에 신청 가능한 개인워크아웃이 프리워크아웃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개인워크아웃은 금융기관이 이미 상각한 채권인 경우 최대 50%까지 원금 감면이 가능하고, 이자와 연체이자가 모두 감면된다. 반면, 프리워크아웃은 원금 감면이 없고, 연체이자만 감면될 뿐 기본이자는 약정 이자율의 50%로 조정된다. 채무 변제 유예 기간도 개인워크아웃은 최장 2년인 반면, 프리워크아웃은 최장 1년이다.
 
이처럼 채무부담 경감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덜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워크아웃 이전에 프리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채무불이행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를 낳게 한다.

이는 연체가 시작되고 나서 상당기간 동안 다각도로 빚을 갚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호전되지 않아 채무재조정을 신청한다기보다, 연체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초기에 채무재조정을 신청하는 경향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개인파산에 비해 불이익 적은 개인회생 신청 급증

이와 함께 주목할 현상은 올해 들어 법원에 대한 개인회생 신청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1월 개인회생 및 개인파산의 합계 신청 건수는 1만3498건으로서 지난해 1월 1만677건에 비해 26.4%나 늘어났다. 지난 2010년 1월과 2011년 1월의 합계 신청 건수가 각각 1만512건과 9768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 1월에 신청 건수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 개인파산 신청은 지난해 1월 4566건에서 올해 1월 4630건으로 소폭 증가에 그친 반면, 개인회생 신청은 지난해 1월 6111건에서 올해 1월 8868건으로 무려 45.1%나 늘어났다. 최근 채무불이행자들은 법원을 통한 구제 방법 중 개인파산보다 개인회생을 선호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법원을 통한 개인회생 또는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사람들은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프리워크아웃 또는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사람들보다 채무 부담이 과중한 것이 일반적이다.

프리워크아웃 또는 개인워크아웃의 대상 채무가 협약에 가입한 금융기관들에 대한 채무로 국한된 반면, 개인회생 또는 개인파산의 대상 채무는 사채 등 모든 채무를 포괄하기 때문이다.

대상 채무의 한도 역시 프리워크아웃 또는 개인워크아웃은 총채무액이 5억원 이하여야 하지만, 개인회생은 담보채무 10억원(무담보채무 5억원)이고, 개인파산은 채무 한도가 아예 없다.

하지만 법원에 개인회생 또는 개인파산을 신청하려면 신청 과정이 복잡해 법률 대리인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채무재조정에 비해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결국, 복잡한 신청 과정과 고비용에도 불구하고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최근 급증했다는 점은 그만큼 과중한 채무부담을 지고 있는 사람들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개인파산보다 개인회생에 최근 신청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채무 탕감 측면에서만 보면, 면책 선고시 변제의무 없이 모든 채무가 탕감되는 개인파산이 최대 5년간 법원이 정한 액수를 변제해야 남은 채무가 탕감되는 개인회생에 비해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소득 및 재산이 있더라도 청산시보다 변제액이 많기만 하면 받아들여지는 개인회생과 달리, 개인파산의 경우에는 파산선고 이후에도 소득이나 재산이 있을 경우 면책이 불허될 수 있다. 이 경우 파산선고로 인한 불이익은 지게 되지만, 채무 탕감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채무 변제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경우가 아니라 소액이더라도 소득이나 재산이 있는 채무불이행자들의 입장에서는 개인회생보다 개인파산이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이 높은 방법일 수 있다.

개인회생 시의 불이익 역시 개인파산 시의 불이익에 비해 적은 것으로 판단된다. 개인파산 선고 시에는 공무원, 교사의 경우 자동퇴직되고,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을 가질 수 없는 등 신분상 불이익이 있지만, 개인회생은 각종 전문자격을 유지하면서 빚을 갚을 수 있다.

최근 개인회생 신청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개인파산보다 개인회생이 상대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은 반면, 불이익은 상대적으로 적은 방법이라는 점에 개인 과중 채무자들이 주목하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 도덕적 해이 현상 확산시 가계부채 대책의 부담 가중

시간을 들여 힘들게 빚을 갚으려 노력하기보다 연체 이후 3개월 이내에 프리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법원의 인가 가능성 및 불이익 정도를 비교해 개인파산보다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최근의 추세는 가계부채 문제에서의 '도덕적 해이' 현상 확산에 대한 우려를 불러 일으킨다.

특히 국민행복기금, 보유주택지분매각제도 등 신정부의 가계부채 관련 대책들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도덕적 해이 현상의 확산 여부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채무자까지도 빚을 안 갚고 일단 버텨 보려는 동기가 확산될 경우 많은 부작용이 예상된다.

우선, 시행 예정인 가계부채 관련 대책들의 형평성 및 적정성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부실화되는 가계 부채의 규모를 늘려 시행 예정인 대책의 예상 소요 재원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이로 인해 정책 당국의 경제적 및 정책적 부담이 가중될 경우, 당초 계획중이던 가계부채 대책의 시행이 지연되거나 대책의 효과가 저하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계층에 대한 지원이 늦어지거나 지원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
 
과중 채무자 구제 대책의 시행을 앞둔 도덕적 해이 현상의 확산은 과거에도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신용카드 위기가 진행 중이던 지난 2003년 신용카드 빚에 허덕이던 채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이 준비됐다.

2003년 2월 통합도산법의 국회 제출을 시작으로, 2003년 6월에는 채무상환기간의 연장, 신청자격의 완화, 신청절차 간소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신용회복지원협약 개정안이 시행됐으며, 2003년 11월에는 이를 바탕으로 신용회복위원회가 출범했다. 2003년 말에는 배드뱅크 관련 계획이 발표됐고 이를 구체화시켜, 2004년 5월에는 한마음금융이 출범했다.

하지만 새로운 구제 방안들이 잇달아 발표되면서 채무자들 사이에서는 일단 빚을 갚지 않고 기다리면 더 유리한 대책이 나올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형성됐고, 그 과정에서 신용카드사들의 연체율은 급등했다. 2002년 말 6.6%였던 신용카드사들의 연체채권비율은 2003년말 14.1%까지 뛰어 올랐고, 유동성 위기로 내몰리던 신용카드사들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 확산은 대출 금융기관들의 연체 및 부실 채권 증가로 이어진다. 금융기관들의 건전성이 악화되고 부실화 리스크가 커지면 이는 해당 금융기관들의 여신 축소로 이어져 건전하고 정상적인 가계 대출마저 위축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향후 계획된 가계부채 관련 대책의 시행과 관련해 도덕적 해이 현상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 연구위원은 "부채 감면 대상을 한계에 다다른 장기연체자로 좁히고, 최근 연체하기 시작한 단기연체자는 수혜 대상이 아님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금융권 자율의 사전채무조정제도(프리워크아웃)를 활성화해 금융기관 및 단기연체자가 손실의 일부를 감수토록 하며, 재산 등 채무상환능력을 충분히 검토해 무임승차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안대선 LG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 과장은 "도덕적 해이 현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가계부채 대책이 강구되기 전부터 장기 연체했던 채무자를 위주로 차등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며 "보다 장기적으로는 신용 및 금융관련 정보가 이해 당사자들 간에 보다 투명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면서, 정직하게 채무를 갚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이득을 보고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이 손해를 보도록 인센티브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