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미국 우선주의 대응하는 민주주의 경제 블록 D7 창설과 경제적 집단방위 구상의 부상

김영 기자
미국 우선주의 대응하는 민주주의 경제 블록 D7 창설과 경제적 집단방위 구상의 부상
©연합뉴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이 트럼프 재집권 이후의 리더십 공백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참여하는 신규 동맹체 'D7' 창설을 공식 제안했다. 이번 구상은 회원국 중 한 곳이 경제적 압박을 받을 경우 공동 대응하는 '경제적 집단방위' 체제를 핵심으로 하며, 이는 안보 동맹을 넘어선 포괄적 경제 안보 블록 형성을 시사한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전 사무총장은 코펜하겐에서 열린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막에 앞서 미국이 국제사회의 전통적인 리더 역할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 일본,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유럽연합(EU)을 구체적인 참여국으로 적시하며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주요국들의 새로운 연합체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제안은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주의 정책이 강화되는 가운데 자유세계의 자구책을 마련하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라스무센 전 총장은 새로운 동맹의 명칭을 민주주의의 첫 글자를 딴 'D7'으로 명명하고 이들이 합심할 경우 미국에도 맞설 수 있는 막강한 세력이 될 것이라 확언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을 자유세계의 자연스러운 지도자로 존경해 왔으나 현재의 미국은 그 역할을 마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미국을 대신해 자유세계를 이끌 새로운 리더십의 등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특히 주목받는 대목은 나토 헌장 5조를 원용한 '경제적 5조'의 도입 제안으로, 이는 특정 국가에 대한 경제적 공격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제도적 장치다. 독일 dpa 통신은 이러한 장치가 중국의 자원 무기화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압박으로부터 민주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자율성을 보호하는 방어막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집단적 경제 대응권의 확보는 개별 국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강대국의 경제 보복을 무력화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라스무센 전 총장은 기술 표준에 대한 협력 강화와 핵심 원자재에 대한 대외 의존도 축소가 동맹의 실질적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 분석에 의하면 이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특정 강대국에 대한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또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남반구 국가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그는 최근 독일 일간 벨트와의 인터뷰에서도 대서양 동맹의 균열이 심화되는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유럽의 자강론을 펼친 바 있다. 유럽 방어를 스스로 책임질 새로운 방위 동맹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은 기존의 안보 질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반영한다. 라스무센 전 총장은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덴마크 총리를 거쳐 2014년까지 나토 수장을 지낸 베테랑 정객으로서의 안목을 이번 제안에 투영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각국의 상이한 경제적 이해관계와 대중국 교역 비중을 고려할 때 실질적인 집단방위 조항 이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이 주도하지 않는 별도의 경제 동맹체가 기존 국제 질서 내에서 실효성을 확보하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회원국 간의 관세 정책이나 산업 규제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내부 갈등 역시 D7 안착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라스무센 전 총장은 "우리가 함께 행동하고 힘을 모으며 집단적으로 움직인다면 막강한 세력이 될 수 있다"며 민주주의 국가들의 단결을 촉구했다. 그는 개별 국가가 파편화되어 대응하기보다는 공동의 원칙 아래 세력화하는 것만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돌파할 유일한 해법임을 강조했다. 이는 국제 정치 무대에서 중견국들이 연대를 통해 강대국의 압박에 대응하는 새로운 균형추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향후 D7 구상이 구체화될 경우 한국을 비롯한 참여 대상국들은 안보와 경제 사이의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는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 질서의 재편 속에서 민주주의 가치 기반의 경제 블록 형성은 국익과 직결되는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 성장과 시장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보수적 관점에서도 이러한 다자간 협력 체제는 리스크 분산 측면에서 긍정적인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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