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박연차 리스트'가 4·29 재보선의 중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박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 측 뿐 아니라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 로비 행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정치권 전체가 긴장하고 있는 것. 화약고가 어느 쪽에서 터지느냐에 따라 여야 모두 선거 구도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추부길 홍보기획비서관이 구속된데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광재 의원에게도 구속 영장이 청구됐다. 한나라당에서는 허태열·권경석 의원이, 민주당의 경우 서갑원 의원 등이 언론을 통해 소환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다.
물론 당사자들은 의혹을 모두 부인하면서 소환 통보를 받은 바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26일 브리핑에서 "주말까지 2~3명 정도를 소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 대상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지금까지 여야가 받은 타격은 엇비슷하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의 숫자나 내용의 비중에 큰 차이가 없고,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것도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정치권은 향후 검찰의 칼끝이 어느 쪽을 향햐느냐에 따라 정국의 방향타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의혹이 확인된 인사가 속한 정당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힐 수 밖에 없고, 재보선에서도 된서리를 맞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미리 수사 시나리오를 세워놓고 '기획 사정'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어린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야당은 정치보복과 거대한 정치적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박주선 최고위원은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범죄수사라는 미명하에 정치 보복적 차원과 재보선에서 야당을 불리한 방향으로 몰아넣기 위한 의도에서 수사가 진행된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 정부가 성공한 정부가 되고 반석 위에 서기 위해서는 이번에 전개되는 부패 스캔들을 그야말로 성역없이 깔끔하게 처리해줘야 한다"며 적극적인 수사를 주문했다.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한나라당 내 친박계도 마찬가지다. 특히 영남권 친박계가 긴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박 회장의 활동 무대가 주로 부산·경남(PK)지역이기 때문이다. 친박계에 대한 수사가 확대될 경우 친이계와 친박계 간의 계파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친박계의 한 핵심 인사는 최근 뉴시스 기자와 만나 "의심하고 싶지 않지만 수사 행태를 보면 '의도'가 있다는 의혹을 가질 수 밖에 없다"며 "재보선은 물론이고 친박계의 행동 반경을 좁히기 위한 게 아니냐"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반면 친이계의 안상수 의원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부산에도 친이가 있고 경남에는 친이가 더 많다"며 "범죄 행위가 있다면 누구라도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