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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태기 위원장 “타임오프, 노동운동 왜곡 문제 바로잡는 과도기적 조치”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한도)가 긴 논의 끝에 14일 고시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17일 단국대 죽전 캠퍼스에서 만난 김태기<사진>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장은 여유있는 웃음을 보이며 "합의된 안은 노동계-경영계 협상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오래된 숙제를 해결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김 위원장은 타임오프제도 시행으로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타임오프는 한국 노동운동의 특수한 문제, 또는 왜곡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과도기적 조치”라며 이번에 합의된 결과는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상급 노동단체들의 구조가 앞으로 크게 개편될 것”이라는 예보도 조심스럽게 했다.

- 민주노총을 위시한 일부 노조는 여전히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이번에 우리가 집중한 것은 조합원 5천명 이상인 초대형 노동조합들이다. 이정도 규모면 사회적 책임이 있고 국민들의 상식선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사실 노동전임자들에게는 조합이 월급을 주는 것이 맞지 않는가? 초대형 노동조합이 전면적으로 거부하면서 파업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자세라고 본다.

일부에서 무효를 주장한다 해도 결국은 노동조합들이 타임오프를 수용하고 이 제도를 정착시킬 것으로 본다. 노동조합원들도 자신들이 낸 조합비가 조합원들을 위해 쓰여지길 원하지 투쟁자금 등에 쓰이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 노사발전재단은 타임오프가 말하는 노조의 자율성에 오히려 반하는 것 아닌가. 기업과 정부가 상급단체 전임자의 임금보전을 해주는데 어떻게 노조의 자율성이 확보되나? 

이 문제는 근면위의 범위 밖의 문제다. 우리는 사업장 내에서의 노동자 전임문제를 다뤘고, 상급단체 파견 문제는 사업장 밖의 문제다. 노사발전재단은 노사정 차원의 문제인데,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데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본다.

- 노사발전재단 운영기간이 2년이고, 2년 후 대선과 총선이 있다. 본래 취지와 다르게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하다.

2년을 잡은 것은 준비기간으로 잡은 것이다. 상급단체 사람 중 현장으로 복귀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재정자립 체계도 만들어야 하니 그 기간을 준 것이다.

포퓰리즘이라고 비판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새로운 제도를 연착륙 시키는 전략적 고려다.

-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혼선이 있을 거라는 걱정도 있다.

이 문제는 복잡한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구체적으로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때문에 미리 너무 깊이 룰을 정하지 않았다. 다만 위원들은 '복수노조와 관련한 전임자 임금문제는 좀 더 두고 보자'고 의견을 모았었다.

이번에 우리가 만든 것은 큰 틀이다. 복수노조가 시행될 때 즈음 조정이 필요하면 조정할 수 있는 문제다. 타임오프도 오는 7월부터 시행되니까 시행착오를 두고 봐야하는데, 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 복수노조 문제까지 예상하긴 어렵다. 아직 1년 정도가 남았으니 어느정도 윤곽이 나온 뒤에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상되는 그 밖의 혼선은.

없을 것 같다. 이번에 우리가 최대한 단순한 구도로 만들었다. 처음부터 복잡하게 만들면 나중에 수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큰 틀이 완성되었고 세부적인 것은 붙일 수 있는 구조다.

- '민주노총이 빠진 노사정 합의'라는 비판이 있다. 

민주노총이 빠진 것이 아니다. 근면위 15명 전원(정부측 공익위원 5명, 경영계 위원 5명, 노동계 위원 5명 중 한국노총·민주노총 각각 2명)이 회의장에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민주노총의 기본 입장이 모호했다. 근면위 위원회에 들어온 목적이 실익 때문인지 명분 때문인지 그 입장이 애매했다. 만약 명분을 중시했다면 위원회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고, 실익을 중시했다면 협상에 충실하면서 자기들의 이해를 채워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위원회에 들어왔다는 것은 일단 이 제도를 인정한 것으로 봐야한다. 그리고 타임오프 제도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면서 실태조사에도 협조를 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실태조사도 거부했다. 명분과 실익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명확히 정리되지 않아 사태가 이렇게 된 것 같다.

- 공정하다고 생각하나?

기본적으로 우리가 만든 안은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중소기업 노동조합은 크게 축소되지 않는다. 반면 초대형 노동조합의 경우는 전임자 수가 10분의 1까지 줄어든다. 이런 면에서 초대형 대기업 노동조합에서 불만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에 합의된 안은 노동계-경영계 협상의 산물이다. 공익위원이 갑자기 끼어들어 안을 생뚱맞게 만든 것이 아니다. 노동계-경영계가 요구안을 냈고, 그것을 보고 공익위원이 조정안을 냈다. 여기에 노동계-경영계가 다시 수정안을 냈고, 공익위원이 재조정을 했다. 기본적으로 노동계-경영계의 요구와 공익위원의 조정을 거쳐서나온 안이기 때문에, 협상의 산물이면서 균형점이 있는 결과라고 평가하고 싶다.

- 노사가 자율로 정할 일에 왜 정부가 개입하냐는 소리도 있다. 

국회가 근면위를 만들어 여기에 법의 결정권을 위임했다. 애초에 국회가 깔끔하게 정리를 했어야 할 문제다.

- 현대중공업 노조처럼 타임오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노조들도 나오고 있다. 

대환영이다. 선진적인 노동조합의 모습이라고 본다. 앞으로 현대중공업 말고도 KT와 같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기업노조들이 계속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 타임오프가 앞으로의 노동운동에 미칠 영향은?

우리나라의 노사관계와 노동운동 현실의 산물이라고 본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제도가 없다. 타임오프라는 이름을 가진 제도는 있지만 전혀 다른 취지의 제도다. 이런 것을 법으로 만든 나라도 없다.

타임오프는 한국 노동운동의 특수한 문제, 또는 왜곡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과도기적 조치다. 언젠가는 이런 제도 자체가 필요 없어 질 것이다. 노동조합이 자기 재정을 가지고 노동전임자를 채용한다면 정부가 왜 간섭하겠나. 노동조합이 재정적으로 자립해서 명실상부하게 자율적이 되어야지, 회사로부터 월급 받으면서 자율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

- 타임오프가 노동운동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보는 건가.

기아차 처럼 반대하는 곳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다수의 노동조합은 수용하고 포트폴리오를 다시 짤 것 같다. 노동조합의 본연의 역할을 찾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투쟁을 하지만, 투쟁보다 더 큰 영역은 조합원의 권익향상과 조합원에 대한 서비스다. 조합을 잘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지 투쟁을 위해 조합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또 '조합은 조합원에게 투쟁 동참을 요구한다'는 도식도 무너질 것으로 본다.
 
기본적으로 상급단체들의 구조도 앞으로 2년 사이에 큰 개편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현장에서 파견된 사람들보다 전문직 채용의 비율이 늘어날 수도 있다. 예컨대 상급단체가 복지관련, 법관련, 산업, 안전관련 전문인력들을 뽑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조같은 경우에는 회계전문인, 자동차기술전문관련인들을 뽑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노사발전재단이 2년간 운영되는데, 이것이 끝나는 기간과 총선·대선 기간이 맞물려 있어도 재단운영을 연장한다던가 하는 일은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현장의 노조들이 이미 구조조정을 했는데 상급단체가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형평성과 정의성에서도 맞지 않다.

- 위원장으로서의 느끼는 성과는?

관련법이 1996년, 그러니까 13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시행되기엔 진통이 너무 커 지연이 되다가 이번에 해결됐다. 오래된 숙제를 해결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보람을 느낀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더 성숙해지고 선진화 되는 데에 기여할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근면위원장이 된 올해 2월 26일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협상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토론문화와 의사결정 문화를 열었다고도 평가할 수 있겠다. 강도높게 회의했고, 최종적 결론도 내려졌다. 지금까지 노사정이 모여 결론을 못내린 것이 많지 않은가.

협상은 한편으로 발견의 과정이기도 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또 나를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면서,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을 보다 깊이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우리는 노동계전체와 경영계전체를 한데로 묶어 생각해왔는데, 노동계 안에서도 여러 입장이 있고 경영계 안에서도 여러 입장이 있다는 것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확실히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