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10주기를 앞두고 범 현대가(家)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기념행사를 준비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이 각 그룹 내부에서 속속 발족되며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싼 파워게임 등 그간 있어왔던 내부분열이 상당부분 불식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특히 내일 있을 고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 4주기 행사와 범 현대가(家)의 기민한 행보가 맞물리며 내부차원에서 통합을 위한 회동이 잇따라 열릴 것으로 보여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을 중심으로 내부결속다지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현대기아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정인영 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의 동생으로 만도 인수를 둘러싸고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기아차와 첨예한 대립을 겪은 바 있다”라며 “지금도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싸고 현정은 회장과의 불화설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등 범 현대가(家)가 사분오열된 상황에서 고 정주영 명예회장 10주기를 기점으로 정몽구 회장이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몽구 회장의 결단은 현대건설인수를 통해 ‘적통성’을 계승, 현대가의 수장으로 자리매김하는 한편 범 현대가(家)의 통합을 위한 포석을 염두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어 그는 “정몽구 회장은 올해 정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이었던 당진 일관제철소 건설을 완수하며 현대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작업에 시동을 걸은 바 있다”라며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말 현대종합상사를 인수한 데 이어 최근 현대오일뱅크 지분 인수와 관련한 재판에서 승소하면서 현대 복원에 앞장서고 있는 모습으로 과거 왕 회장이 이끌던 시절의 현대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올해와 내년을 통해 가시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 적통성 확보가 우선
이처럼 고 정주영 명예회장 10주기를 기점으로 현대가(家)행보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적통성 계승 여부가 명확히 갈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대의 경우 IMF이전까지 명실공이 국내 재계 1위였지만 지난 2000년 왕자의 난을 겪은 이후 급격히 쇠락,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이끄는 삼성에 1위를 내주는 등 뼈아픈 경험을 한 바 있어 수장을 중심으로 결집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대건설 인수가 실질적인 현대가의 수장을 결정짓는 턴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론이다.
이와 관련 한 M&A전문 컨설턴트는 “정 명예회장의 기일이 내년 3월21일로 아직 8개월이나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발 빠른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내부적으로 정 명예회장의 10주기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함은 물론 정몽구 회장이 현대건설 인수를 통해 범 현대가(家)통합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며 “현정은 회장 외에 정씨 일가의 경우 현대건설 인수에 피 흘리는 싸움을 벌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돼 인수비용인 3조 원 가량을 감당할 수 있는 현대기아차가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범 현대가(家)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반면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건설 인수를 ‘확실한 신성장 동력’으로 규정하고 최우선 과제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긴 했지만 인수에 3조원이 넘는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됨에 따라 채권단으로부터 재무구조개선 압박을 받고 있는 현대그룹이 이를 성사시키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론이다.
이에 따라 이번 고 정주영 명예회장 10주기 행사를 기점으로 정몽구 회장이 현대가(家)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 범 현대가(家) 결집 예상
정주영 회장의 10주기 행사가 재계에 큰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를 계기로 범 현대가(家)의 비상을 위한 통합작업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강해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과 정몽구 회장의 현대기아차그룹이 어떤 방식으로든 합의점을 찾아낼 것이라는 관측이 점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 현대그룹 내부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자금사정으로 현대건설 인수가 어렵다고 판단, 현대건설이 보유한 상선 지분만 별도로 인수하게 된다면 정몽구 회장의 현대기아차 그룹은 상선 지분만을 제외한 현대건설을 인수해 현대기아차그룹과 현대그룹 간 대결구도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있다”라며 왕 회장의 법통을 이어받고 현대가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정몽구 회장이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그동안 현대가는 정 명예회장의 기일이 되면 생전에 머물던 청운동 자택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 것 외에는 공통적인 추모행사를 하지 않았지만 10주기 행사에 현대가 전체가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들어 통합작업이 올해 안에 가시화될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올해 9주기에도 스위스 출장으로 불참한 정몽준 의원을 제외하고 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정상영 KCC 명예회장,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 등이 참석했지만 선영은 그룹별로 날짜를 다르게 배분해 참배를 진행했다. 추모식 역시 개별 사업장별로 분향소 마련, 추모 음악회 등 다양하게 치러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각 그룹이 TF팀을 발족하며 다양한 추모행사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현대기아차그룹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정주영 명예회장의 발자취를 생각했을 때 10주기는 범현대가가 전반적으로 준비해야 할 사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라며 “현대건설 인수전을 넘어 이번 10주년을 계기로 그룹 내 경영이념과 철학을 정립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과거 왕 회장이 이끌던 시절의 현대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올해와 내년을 통해 가시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현대가의 이 같은 행보는 현대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최근의 움직임과 동일선상에 있기 때문에 현대건설 인수도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