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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FTA 협상개시… 14조달러 '세계3위 시장' 탄생

[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인구 규모 15억명, 국내총생산(GDP) 합계 14조달러에 달하는 동북아시아 시장 통합을 위한 논의가 시작된다.

박태호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0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천더밍(陳德銘) 중국 상무부장, 에다노 유키오(枝野 幸男) 일본 경제산업대신과 3국 통상장관회의를 열고 한·중·일 FTA 협상개시를 선언했다.

이로써 한·중·일 세 나라는 지난 2003년 FTA 체결을 위한 민간 공동연구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게 됐다.

3국간 관세장벽 철폐를 위한 FTA가 타결되면 인구 규모는 15억2200만명,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4조3000억달러의 거대한 역내 내수시장이 탄생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18조달러, 유럽연합(EU) 17조6000억달러에 이어 제3위의 지역통합시장이다. 인구 기준으로는 전 세계의 22%, GDP로는 20%를 점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이날 협상을 개시한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과 맞물려 동아시아 경제협력의 기틀이 될 것으로 보인다. RCEP은 아세안(ASEAN) 10개국와 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16개국이 참여하는 협상이다.

한·중·일 FTA가 타결되면 광대한 역내 시장이 생김으로써 역외시장에 의존도가 높고 외생변수에 취약한 동북아 교역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중국을 최종소비지로 하는 일반무역이 34.3%, 제3국 수출을 위한 가공무역은 48.9%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대(對) 중국 수출의 대부분이 중국의 수출용 중간재란 뜻이다.

미국과 유럽으로의 중국 수출이 줄면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도 덩달아 감소한다. 올해 들어 중국의 수출 증가율이 둔화하자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대중, 대일 교역에서 부담이 컸던 비관세장벽이 한·중·일 FTA로 철폐되면 우리 기업의 중국, 일본으로의 수출이 확대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높은 수준의 한·중·일 FTA가 체결되면 발효 후 10년간 우리나라의 실질 GDP가 1.45%, 후생 수준은 163억4700만달러 증가한다고 추정했다.

김영귀 KIEP 지역통상팀장은 "외국인 투자증가와 비관세장벽 감축에 따른 효과까지 고려하면 3국 FTA의 거시경제효과는 더 크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기술경쟁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이나 산업은 혹독한 구조조정이 우려된다.

김도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세 나라 모두 제조업분야가 강해 경쟁력에 따라 산업별 특화가 심화하거나 분업구조가 공고화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석유화학, 기계, 전기전자, 자동차, 철강 등의 분야는 혜택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농수산 분야는 가장 경쟁력이 있는 중국과의 별도 FTA 협상이 진행 중이고, 우리나라와 일본이 농업보호 성향이 강해 개방 범위가 넓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한·중간 농업시장 개방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피해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중·일이 아닌 한·중 FTA에 따른 영향 분석이지만 농협경제연구소는 한·중 FTA로 13개 과수와 채소의 10년간 피해액이 8조~10조원에 달한다고 예상했다.

FTA에 따른 교역증대는 상호 긴장을 완화하고 상호의존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경제 외적 효과도 만만치 않다.

세 나라간 경제협력 속에서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갈등, 독도에 대한 한·일 대립, 북한 문제 등 지정학적 분쟁의 평화적 해결방안을 모색할 기회도 모색할 수 있다.

최경림 외교통상부 FTA 교섭대표는 "한·중·일 FTA는 경제적 효과 외에도 동북아 3국간 경제협력 관계를 제도화해 정치적 변수가 경제관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정치·안보 분야 협력으로 확산돼 향후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구축된다고 기대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중국과 FTA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일 FTA 논의도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한·일 FTA 협상은 2003년 12월에 시작됐으나 2004년 11월 중단됐지만 일본이 FTA 협상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어 한·일 FTA 협상도 조만간 재개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일단 양자 FTA를 우선한다는 입장이다.

양자 FTA 결과를 한·중·일 FTA에, 한·중·일 FTA 협상결과를 RCEP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추진한다.

우리 정부는 3국 FTA 협상에서 우선 협상범위에 대한 협의부터 추진하고 이에 따라 협상분과를 구성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상품, 서비스, 투자, 기타 등 모든 분야의 협상을 동시에 개시하되 상품 분야는 양자간 협상 위주로 진행할 방침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이날 '한·중·일 FTA 및 RCEP 협상의 개시와 우리의 대응방안'이란 보고서에서 "한·중·일 FTA가 RCEP을 위해 필요하고, 한·중·일 FTA가 지역 차원의 전반적인 관계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는 한·중·일 FTA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경제적 협력관계에서 정치동맹으로 발전한 유럽연합(EU)에서 보듯이 한·중·일 FTA는 침략과 피지배 등으로 얼룩진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동북아 협력시대를 열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각국의 구조조정 부담, 영토분쟁, 중화경제권 확산 우려, 북한문제 등 다양한 정치·경제 갈등 요인으로 협상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세 나라는 제1차 협상을 내년 3~4월께 한국에서 열 계획이다. 구체적인 시기와 장소는 3국이 협의하기로 했다.

통상교섭본부의 한 관계자는 "동아시아 경제통합과정에서 우리의 민감 분야를 보호하고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FTA 협상을 추진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