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국대사 테러사건으로 다시 관심을 받게 된 대테러방지법은 역시나 여야 간의 거친 설전을 낳았다. 국가안보에 대한 요구는 절실하지만, 그동안의 안보 관련 법이 정치적으로 악용된 선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안보와 관련한 법으로는 이미 국가보안법이 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이 군부, 신군부를 거치며 독재의 수단으로 활용된 사례가 더 많다. 국보법은 법제화된 폭력으로서 '평시의 계엄령'과 같은 역할을 했다. 법의 비상상태를 결정하는 자가 대통령이란 점은 사실상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군부, 신군부 정권은 목적달성을 위해 국가보안법과 계엄령을 사용했다. 모든 국민이 국가의 폭력을 두려워했다는 점에서 이는 정부의 국민에 대한 테러라고 볼 수 있다. 테러는 소수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국가보안법이 테러억제수단이 아닌, 통치자의 정적 제거 수단이 된 것이다. 박정희에 의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납치사건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지난 2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 사이버 심리전단이 대선에서 특정 후보와 정당을 지지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국민들은 아직도 정보기관이 기득정권의 유지수단으로 기능한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
국정원이 이미 전적이 있는 주미대사 테러범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은, 국정원이 본래 수행해야 할 첩보와 정보수집 기능이 원칙대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쳐왔다. 하지만 정작 행정조직이 제 소임을 못하고 엉뚱한 행위를 하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몇 번이나 사장된 테러방지법을 그대로 다시 꺼내 드는 것이 국민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만약 테러방지법을 다시 꺼내두려면 여야는 정치가 아닌, '폭력'과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 안보법에 의해 개인의 생각과 표현이 제약받아서는 안된다. 다만 현실로 드러난 폭력은 엄격하게 징벌해야 한다.
테러행위는 사명과 소신을 가진다는 데서 일반적인 폭력범죄와 다르다. 정치적, 종교적 소신을 거잔 개인을 방치할 경우 IS나 보코하람과 마찬가지로 조직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반쪽을 테러조직이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안보는 소홀히 할 수 없다. 폭력은 처벌하면 되지만 테러는 예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범자인 김기종을 방치한 사법기관과 국정원의 전례는 안일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