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260년 역사 안동 학남고택 국가 민속문화 유산 지정... 항일 투쟁의 상징적 거점 입증

김영 기자
260년 역사 안동 학남고택 국가 민속문화 유산 지정... 항일 투쟁의 상징적 거점 입증
©연합뉴스

 

안동 학남고택이 국가 민속문화 유산으로 지정되며 전통 반가 건축의 보존 가치와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적 실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1759년 건립된 이 가옥은 풍산김씨 집안의 터전으로서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와 자금 조달 창구 역할을 수행한 실증적 공간이다. 국가유산청은 건축적 특수성과 오미마을이 배출한 24명 독립투사의 기록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을 이번 지정의 핵심 근거로 삼았다.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마을에 위치한 학남고택이 최근 국가 민속문화 유산으로 승격되며 지역 문화유산의 법적 지위를 확보했다. 이 고택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일제강점기 계몽운동과 항일 투쟁의 중심지였던 오미마을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핵심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풍산김씨 집성촌인 이곳은 김응섭, 김재봉 선생을 포함해 총 24명의 독립투사를 배출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해온 장소다.

건축사적 측면에서 학남고택은 안동 지역의 전형적인 'ㅁ' 자형 뜰 집 구조와 차별화되는 '튼 ㅁ자'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1759년 김상목이 안채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1826년 그의 손자인 학남 김중우가 사랑채와 행랑채를 증축하며 현재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안채와 사랑채가 완전히 결합하지 않은 독특한 배치는 건축적 희소성과 함께 지역적 특수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지표다.

고택 내부의 사랑채 다락은 항일 투쟁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몸을 숨기고 거사를 도모했던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되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수납공간처럼 보이나 내부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외부의 시선을 피해 인원을 수용하기에 적합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는 당시 치열했던 항일 운동의 긴박함을 보여주는 물리적 증거로서 국가유산 지정 과정에서 높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독립자금 조달 과정에서도 학남고택은 은밀한 통로로서 기능하며 항일 운동의 병참 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경주 최부자집 등 영남권의 주요 가문들과 교류하며 반찬 용기 속에 자금을 은닉해 전달하는 방식을 취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활동은 풍산김씨 가문이 지닌 선비 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구체적인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학남고택과 연관된 주요 인물들의 활동상은 한국 근현대사의 핵심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상하이 임시정부 법무장관을 지낸 김응섭 선생은 시베리아와 만주를 무대로 무장 투쟁과 조직 사업에 헌신한 인물이다. 1925년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한 김재봉 선생 역시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하며 일제강점기 내내 항일 투쟁의 선봉에 섰다.

기록 문화의 보고로서 학남고택이 보유한 1만여 점의 고문서와 서화는 안동 선비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김응섭 선생의 '칠십칠년회고록' 등 당시의 정세를 생생하게 담은 자료들은 현재 한국국학진흥원 등에 기탁되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이러한 방대한 자료군은 고택이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지역 사회의 변천사를 증명하는 학술적 거점임을 뒷받침한다.

현재 고택은 사랑채와 별채 일부를 한옥 체험 공간으로 개방하며 전통문화의 현대적 계승을 도모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260년의 세월이 배어 있는 목조 구조물 속에서 안동 반가의 생활양식을 직접 체험하며 역사의 숨결을 느낀다. 관리 주체인 김주연 대표는 고택의 원형을 보전하기 위해 대학원에서 관련 학문을 전공하는 등 콘텐츠 내실화에 주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통 가옥의 국가유산 지정이 사유 재산권 행사나 현대적 시설 보완에 제약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화유산의 체계적 보존을 통한 지역 브랜드 가치 상승과 관광 자원화의 경제적 효용이 이러한 비용적 측면을 상쇄한다는 것이 시장의 일반적인 평가다. 법치에 근거한 엄격한 관리 체계는 오히려 고택의 장기적인 자산 가치를 보호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김주연 학남고택 대표는 "증조부와 집안 어른들이 이곳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고 항일운동을 논의했다는 역사를 지키는 것이 후손의 도리다"라며 "이 집의 역사와 콘텐츠를 제대로 이해하고 전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정을 계기로 안동 지역의 항일 운동 유적지에 대한 재조명과 보존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분석한다.

향후 학남고택은 국가 지원을 통해 보다 정밀한 보수와 관리가 이루어질 예정이며, 이는 지역 문화 관광 산업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전통 건축의 미학적 완성도와 독립운동의 숭고한 가치가 결합한 이 공간은 국민 교육의 장이자 글로벌 문화 콘텐츠로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협력을 통한 체계적인 활용 방안 마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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