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거친 풍랑과 사회의 그늘진 곳을 시적인 언어로 탐구해온 소설가 김숨(52)이 신작 장편소설 '딸기 이론'으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에서 김 작가는 한국 딸기밭에 '던져진' 여성 이주 노동자의 삶을 통해 '노동력'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복잡한 내면과 정체성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민음사를 통해 출간된 '딸기 이론'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진행된 김 작가 인터뷰에서 그 베일을 벗었다. 작품은 2년여에 걸친 심층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국 딸기농장에서 일하는 여성 이주 노동자의 현실과 내면을 생생하게 그린다. 특히 미얀마 출신 여성 노동자 '샤빼'가 자신과 동료 '보파'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전개되며, 이주 노동자들이 겪는 억압적 노동 현실부터 그들이 품은 다양한 욕망까지 다층적으로 그려낸다.
김 작가의 이주 노동자에 대한 관심은 과거 깻잎 농장 캄보디아 노동자 인터뷰 경험('니읍' 발표)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이번 작품을 위해 법정, 세미나, 쉼터, 버스정류장 등 이주 노동자들이 머무는 다양한 공간에서 2년여간 취재를 이어갔고, 이러한 '시적인 만남'이 '딸기 이론'으로 결실을 맺었다.
소설의 첫 문장 「난 한 사람으로 왔어. 먼저 한 사람으로, 너도 똑같아. 먼저 한 사람으로 딸기밭에 왔어.」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다. 김 작가는 이주 노동자를 단순히 '노동력'이나 '집단'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개별적인 존재로 바라보고자 했다. 소설 속 샤빼의 고백처럼 「태생이 다른 우리를 딸기밭 마을 사람들은 한 봉지 속에 든 일회용 젓가락이나 종이컵 취급해.」라는 폭력적 현실과 대비되며 이들의 본질적 존엄성을 선언한다.
작가는 이주 노동자들을 순진하고 착한 존재로만 그리지 않는다. 소설 속 샤빼는 한국 딸기밭에서 7년째 숙식하며 일하는 고된 삶 속에서도 블랙핑크 리사처럼 큰 눈을 갖고 싶어 하고, 교환학생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또한 고국 미얀마의 내전 현실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이는 이들 역시 좌절, 욕망, 분노 등 '자기 욕망에 충실한 MZ세대'로서의 면모를 지닌 '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반전 요소다. 김 작가는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개인사, 가족사, 국가 역사 등을 총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철학을 제시한다.
'딸기 이론'은 소설 속 핵심 단어 '모름다움'을 통해 타자와의 공존과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모름다움'은 「보지 못한 데서 생겨난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뜻한다. 이는 세상이 강요하는 획일적인 아름다움 너머의 가치를 통해 타자를 이해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작품의 궁극적인 메시지로 이어진다. 소설 속 한 문장처럼 「우리는 다른 계절에, 다른 날에, 딸기밭으로 던져졌어. 우리의 던져짐을 한국어로는 '이주'라고 하지.」라는 현실 인식은 '모름다움'의 가치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딸기 이론'이 제시하는 '모름다움'의 가치는 독자들이 이주 노동자를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보편의 억압에서 자유로운 '한 사람'으로서의 개별성을 인정하며 타자와의 건강한 공존과 연대를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 사회의 다문화적 현실 속에서 문학이 던지는 윤리적 질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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