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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정유산업 진출… 정유4사 과점 깨져

[재경일보 오희정 기자] 삼성그룹이 정유산업에까지 진출하게 됐다.

삼성토탈이 국내 제5 휘발유 공급사로서 오는 6월부터 석유공사에 알뜰주유소용 휘발유를 공급하게 되면서 SK, GS, 에쓰오엘(S-Oil), 현대오일 등 정유 4사가 지켜온 50년간의 독점체제도 깨지게 됐다.

4사가 존재하고 있지만 담합에 가까울 정도로 사실상 가격경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정부는 기름값 인하를 위한 경쟁 체제를 만들고자 기존 업계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삼성의 진입을 허용하는 강수를 내놓았다.

정부는 기름값 인하를 위해 알뜰주유소와 석유현물 전자상거래시장 개설 등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기존 정유사로부터 기름을 공급받고 있는 알뜰주유소는 실제적인 가격 인하의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고, 한국거래소가 국내 석유제품 유통가격을 투명화하겠다며 야심차게 개설한 석유현물 전자상거래시장도 지난달 30일 개장 이후 18일까지 13거래일 동안 총 거래건수가 고작 20여건(하루 평균 1.5건), 거래량도 휘발유 22만ℓ, 경유 36만ℓ 수준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 1만3천여개 주유소 가운데 무려 90%에 달하는 전국의 주유소들이 4대 정유사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에 있어 정유사들의 따가운 눈치를 의식하지 않고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을 제치고 삼성그룹이 '노른자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정유산업에 석유공급 과점을 깨고 기름값 인하를 이끌어낸다는 명분까지 얻으면서 당당하게 진출하게 돼 특혜 논란도 일고 있다. 삼성토탈이 알뜰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면서 향후 국내에 주유소를 직접 설치해 운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같은 부담을 감안한 듯 삼성토탈은 "향후 정유사업에 진출하거나 석유 유통사업을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기는 하다.

삼성토탈은 그동안 국내 휘발유 시장 진출을 타진해왔으나 기존 정유사들의 방해공작과 국내 유통망 부족 등으로 실제 공급에 성공하지는 못했었다.

지식경제부,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5개 정부 부처는 합동으로 19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현대오일뱅크 등 4대 정유사가 과점하던 휘발유 공급시장에 삼성토탈이 신규 사업자로 참여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석유제품시장 경쟁촉진 및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개선방안에 따르면, 삼성토탈이 국내 5번째 휘발유 공급사로 참여하게 됐다.

삼성토탈은 6월부터 석유공사에 알뜰주유소용 휘발유를 공급하기로 하고 현재 석유공사와 물량과 가격 등 세부 공급 조건을 협의중이다.

매달 일본에 휘발유 3만7천배럴을 수출해온 삼성토탈은 내달부터 8만8천배럴의 휘발유를 추가로 생산할 예정이다. 현재 국내 알뜰주유소가 필요한 휘발유 양이 월 5~6만 배럴 정도라는 점에서 삼성토탈의 공급여력은 충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삼성토탈은 그동안 유통 인프라가 없다는 이유로 휘발유를 일본에 수출해왔지만, 이를 국내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또 삼성토탈은 원유를 수입해 휘발유를 생산 공급하는 일반 정유사와는 달리 납사(나프타, 원유의 분해산물)를 들여와 휘발유로 만들기 때문에 3%의 수입 관세도 면제 받아 기존 정유사보다 휘발유를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다.

삼성토탈이 석유공사에 공급하는 휘발유는 완제품이 아닌 중간제품 형태로, 정제단계는 거쳤지만 첨가제를 넣는 등 최종 마무리 작업이 필요해 석유공사 책임하에 이 작업이 이루어지게 되며, 석유공사는 삼성토탈로부터 공급받은 휘발유를 알뜰주유소에 직접 공급하게 된다.

정부는 삼성토탈의 사업 진출을 통해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4대 정유사의 가격 경쟁이 유도하는 한편 각종 휘발유 가격인하 정책을 추진해 알뜰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이 인근보다 80원 가량 싸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삼성토탈의 정유산업 진입과 함께 정유사가 주유소에 전량 구매를 강요하면 불공정거래로 간주, 과징금을 물리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정유사가 일선 주유소에 전량구매 계약을 강요하면 불공정거래로 간주, 과징금을 물리도록 하는 관련 규정을 신설했다. 그간 전량구매계약은 대형 정유사의 독과점적 지위 남용사례로 지적돼왔다.

여러 정유사의 석유 제품을 섞어서 파는 혼합판매가 활성화되면 정유사 간 공급가 경쟁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정부는 공정위의 '주유소 혼합판매 거래기준'을 바탕으로 정유사와 주유소 간 계약변경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전량구매계약의 강제성 여부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해 불공정행위가 발견될 경우 엄중히 조치하기로 했다.

또 전자상거래용 수입 물량은 세제 혜택과 규제완화로 공급 확대를 유도하기로 했다.

정부는 현재 전자상거래용 수입 물량에 붙는 할당관세(3%)를 없애고 리터당 16원의 석유수입 부과금을 환급할 계획이다.

또 전자상거래용 경유 수입분(15만㎘ 초과시)에 부과하던 바이오디젤 혼합의무도 면제해준다.

전자상거래용 물량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0.3%에서 0.5%로 상향하고, 거래보증금 요건을 완화한다.

이같은 조치로 정부는 전자상거래용 수입 물량이 월 5천만ℓ, 연말까지 3억5천만ℓ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알뜰주유소 사업자에 대한 혜택도 대폭 늘린다.

소득세와 법인세, 지방세 등을 일시 감면하고 시설개선자금 및 외상거래자금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서울지역에서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면 시설개선자금으로 5천만원을 주며 지방은 2천700만원을 무상으로 지원한다. 또 기존 주유소를 인수해 알뜰주유로 전환하면 신용보증기금에서 최대 100억원의 보증지원에 나선다.

이 같은 혜택으로 인해 정부는 연말까지 전국 1천개, 서울 25개까지 알뜰주유소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알뜰주유소에 공급되는 기름값을 낮추기 위해 석유공사가 저렴한 월말 현물구매 물량을 현 20%에서 50%까지 확대하고 해외석유제품의 직수입도 추진한다. 현재 주변주유소보다 40원 정도 저렴한데 정부는 이런 대책을 통해 리터당 30~40원의 추가인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밖에 하반기 중 석유공사에 '석유제품 유통사업본부'를 설치ㆍ운영하고 지경부에 범부처가 참여하는 '석유유통지원센터'를 개설해 관련 사항에 대한 원스톱 행정서비스가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다.

또 석유제품 가격정보를 오피넷 외 소비자 관련 사이트에도 공개하고 소비자원ㆍ소비자단체 등과 협력해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석유제품시장 정보를 전달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의 과제별 추진상황과 국내외 석유제품의 가격 추이를 면밀히 점검해 중산층과 서민들이 고유가로 받는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