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박현규 기자] 주행거리를 조작한 차량을 판매해 수십억원을 챙긴 자동차 판매업자와 조작 기술자 등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는 주행거리를 실제보다 줄인 중고차를 판매한 혐의(사기)로 이모(58)씨 등 29개 중고차 매매업체 대표와 업체 소속 딜러 등 7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은 또 이들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차량 주행거리를 조작한 기술자 김모(40)씨와 박모(39)씨를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강서구, 동대문구 장한평 등의 중고차 매매단지에서 중고차업체를 운영하는 이씨 등은 중고차를 경매로 낙찰받은 뒤 김씨 등 기술자에게 의뢰해 건당 1만∼30만원을 주고 주행거리를 적게는 2000㎞에서 많게는 16만㎞까지 줄인 차량 430여대를 실제 주행거리 기준 시가보다 50만∼300만원씩 더 받고 422명에게 팔아 56억4000만원에 이르는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주행거리를 조작한 차량을 중고차 성능검사장에 가져가 '중고자동차 성능점검 기록부'까지 발급받아 정상 차량인 것처럼 꾸몄다.
또 수리를 받으러 오는 모든 차량의 주행거리를 기록해두는 제조사 AS 센터에 소비자가 직접 주행거리를 확인할 경우에 대비, 차량 점검 날짜를 확인해 최근에 점검을 받은 차량이면 조작 폭을 줄이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고 경찰은 전했다.
기술자 김씨 등은 상대적으로 조작이 쉬운 다이얼식 구형 계기판뿐 아니라 디지털 계기판도 능숙하게 다뤘고 중고차 매매 단지 내에 '주행거리를 줄여준다'는 전단지를 뿌리기도 했다.
이들은 평소 서울과 수도권 일대 폐차장을 다니며 폐차된 차량의 주행거리 기록용 전자칩을 차종별로 확보해 놓고는 조작 의뢰가 들어온 차량보다 주행거리가 짧은 칩으로 바꿔치기하는 수법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폐차된 수가 적어 칩을 구하기 어려운 신형 차종을 의뢰받으면 칩에 저장된 주행거리 기록을 조작하는 특수 프로그램과 장비를 이용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현실적으로 주행거리 조작 여부를 확인하기가 어려워 조작된 차량을 샀다가 수리비용 등으로 목돈을 날리는 경우가 많다"며 "차량 등록증에 주행거리 기재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등 제도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