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정부가 대내외 여건 악화에도 고수해왔던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국내 경기가 올해 3분기에 바닥을 찍고 회복세에 접어든다는 `3분기 저점론' 희망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을 뿐 아니라 L자형의 경기둔화 흐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횡보론'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9일 내년도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과 관련, "3분기 국내총생산이 나쁘게 나온 것을 감안해야 할 것 같다"며 "하방위험이 있어 (내년 전망을 어떻게 할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손보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명시적으로 기존 전망치를 내리겠다고 밝히지 않았지만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기재부가 지난 9월 25일 2013년 예산안 발표에서 4%대 전망을 내놓은지 불과 석 달만으로, 이 같은 전망치는 국내외 연구기관·경제기구의 시각과 괴리가 큰 것으로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정부는 내년부터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가 점차 개선되고, 중국 등 신흥국 성장세가 비교적 견고하게 유지된다고 내다보면서 올해 3.3%, 내년 4.0% 성장에 이어 2014년 4.3%, 2015년 4.5%, 2016년 4.5% 등 탄탄한 성장세를 유지한다고 밝혔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10월 `2013년ㆍ중기 경제전망'에서 유럽 재정위기의 장기화와 중국, 미국의 부진으로 수출여건이 신속하게 개선되기 어렵고, 국내 가계부채와 고용ㆍ내수의 전망도 밝지 않다는 이유로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3.5%로 제시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전망치를 기존 3.4%에서 3.0%로 낮췄고, 한국은행은 3.2%로 수정했다.
세계 주요 투자은행(IB) 10곳의 내년 한국 성장률 평균치는 11월말 현재 3.0%다. 노무라(2.5%), UBS(2.9%), 메릴린치(2.8%), 도이체방크(2.6%), BNP파리바(2.9%) 등은 2%대를 예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경제전망'에서 우리나라의 2013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3.1%로 예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달 `세계경제 전망보고서'에서 세계 경제의 회복세가 전반적으로 둔화하고 있다면서 3.9%에서 3.6%로 전망치를 낮췄다.
대부분 기관이 낮게는 2%대, 높게는 3%대로 줄줄이 내려 정부도 이에 맞춰 내년 성장률을 3%대로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
박재완 기재부 장관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예산심의과정에서 좀 더 하향 조정해서 현실적으로 가장 근접된 전망치를 제시하겠다"며 수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정부의 시각 조정엔 향후 수출과 내수 전망이 밝지 않은 등 대내외 여건이 3개월 전과 비교해 녹록지 않다는 점이 작용했다.
전분기와 비교한 우리나라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1%로, 금융위기가 한창인 2009년 1분기(0.1% 성장) 수준으로 떨어졌다. 설비투자 부진에 따른 내수악화가 원인이다. 향후에도 투자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내수 부진은 4분기에도 이어질 우려가 크다.
이번 성장률 전망치 하향조정의 주요인은 향후 수출과 내수 전망의 불확실성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중국의 새 지도부가 '균형무역' 달성을 목표로 설정, 중국으로의 수출여건이 더 나빠진다고 예상했다. 구조조정과 균형을 중시하는 경제정책을 추구해 이전처럼 고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중국의 수출 둔화는 곧바로 한국의 대(對) 중국 수출둔화로 이어진다. 대중 수출의 ⅔가량이 가공무역이나 보세무역 등 재수출용이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최근 소비, 주택, 고용 등을 중심으로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으나 '재정절벽(fiscal cliff)'이란 암초가 여전히 버티고 있다.
유럽은 그리스와 스페인 등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아 세계 경제의 회복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수출 의존도가 높은 점을 감안하면 대외 경제의 전개상황에 따라 우리 경제의 성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우리 경제의 흐름과 세계 경제의 구조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내년 경제 전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내년은 올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이나 하반기 회복세가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에 따라 성장률 전망치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성장률 전망치를 포함한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의 발표일을 잠정적으로 27일로 잡았다.
한편, 정부는 소비심리 위축, 투자 부진 등으로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고 보고 경제활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 기울일 방침이다.
재정이 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되도록 내년 상반기에 재정의 조기집행을 추진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년부터 세 차례 내놨던 정부의 부양카드는 재정 조기집행이다. 상반기 조기집행률이 2009년 64.8%, 2010년 61.0%, 올해 60.9%였다.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60% 내외에서 재정이 조기 집행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인 수출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도 다듬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재정위기로 휘청이고 있는 만큼 수출시장을 신흥국으로 다변화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내년에도 물가는 2%대의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선진형 물가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을 이어간다. 지방 공공요금은 지역별 격차가 커 산정기준을 개선하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공공요금를 합리화한다.
거시건전성 안정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국내로 급격히 들어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초까지 미국의 재정절벽 문제가 풀리고, 유럽 재정위기의 해결 실마리가 보이면 국제 금융시장이 안정화해 유동성 장세가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핫머니'가 국내 자본시장을 넘나들며 환율을 교란시킬 수 있어 정부는 올해말 선보인 선물환 포지션 한도 강화와 같은 규제를 추가로 내놓을 계획이다.
또 복지 분야에선 양육수당, 대학생 등록금 부담 완화, 전세자금ㆍ주택구입자금 융자지원, 기초수급자 확대 등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추진한다.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를 위해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