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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복지향한 여정 중단, 대통령의 실망스런 항해계획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국회 시정연설(부제 '대한민국의 위대한 여정, 미래를 함께 만들어갑시다')을 하고, 2014년도 정부 예산안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2014년도 복지예산을 확대 편성했다"고 밝힌 이번 정부 예산안은 증세를 배제하고 건전재정을 강조함으로써 스스로 한계에 갇힌, 복지국가 민심을 외면한 공약파기 反복지예산에 불과하다. 복지국가민심을 외면한 2014년도 예산안의 본질을 호도하고 복지공약 후퇴에 대해 일언반구 없는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또한 복지국가민심을 최대한 반영해 예산안을 새롭게 편성하고 공공성 강화 및 보편적 복지 확대를 위해 재원배분구조와 재정운용기조 역시 근본적으로 재구조화할 것을 촉구한다. 
 
이번 시정연설은 박근혜 대통령의 척박한 복지철학을 그대로 드러냈다. 특히 그는 "의료, 교육, 금융, 관광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의료, 교육, 금융 분야는 모두 공공성이 전제되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에 대한 규제를 풀고 시장을 개방해 의료민영화 등 영리적 사업을 장려할 경우, 결국 국민들이 지불해야하는 의료비의 상승만 불러온 채, 공공성이 훼손되어 몇몇 재벌들에게만 특혜가 되고 서민들의 고통은 커질 것이다.

또한 외국인투자촉진 법안, 관광분야 투자활성화 법안 등은 의료시장 민영화 및 의료시장 개방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검증되지 않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대통령이 나서서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는 시장주의에 입각한 MB정부의 국정철학과 맞닿는 부분으로 대한민국이라는 화분을 잘 키워야하는 시점에 묘목을 뽑아서 팔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앞으로 부정 수급 등 복지 누수를 철저히 방지하고 서비스기관 간 칸막이를 없애 편리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겠다"며 '내용'없이 인프라와 모럴해저드만 강조하고 있다. 생애주기별 맞춤형으로 복지의 패러다임을 전환한다지만,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보편적 복지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정책과 법안을 제출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르신들의 생활 안정과 국민들의 노후 안정을 위해 내년 7월 기초연금제도 도입을 목표로 예산 5조2000억원을 반영했다"지만 이는 국민연금과 연계해 기왕에 법률로 보장받은 연금수급권을 후퇴시킨 정부의 기초연금안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생애주기별 맞춤형으로 전환을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는 발언과는 달리, 박근혜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적이 없다. 박근혜 정부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맞춤형 급여체계 개편방안의 내용을 반영한 법안은 새누리당 유재중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유일하며, 이 법안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가지고 있는 민주적 정당성과 권리성 급여의 본질을 부정하고, 이전의 생활보호 시대로 회귀하는 개악안일 뿐만 아니라 내용조차도 모순되거나 불완전해 상임위에서 논의가 중단된 법률안이다.

또한 지난 6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법률안은 정부가 행정절차법에 따라 국회에 발의해 국회에서 종합적으로 심의되는 과정이 내용상·절차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법안의 정부 입법을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11월 중순이 지난 지금까지도 박근혜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있다.

국민들 대다수의 생존권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중요한 법률안을 정부가 발의하지 않고 탈법적으로 의원입법의 형식을 통해 뒷문으로 법률안을 제출했거나 제출한다면, 이는 행정절차법에 따른 60일간의 공고기간을 거쳐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되어 있는 부담을 피하기 위한 '꼼수'로 국민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시정연설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국민을 상대로 거짓을 말한 것에 대한 대통령의 해명과 함께 정부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제출을 촉구한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전개된 복지국가논쟁은 범국민적인 복지국가민심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박근혜 정부는 이와 같은 범국민적인 복지국가민심을 실현할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2014년도 예산안은 박근혜 정부가 주체적으로 편성한 첫 예산으로, 박근혜 정부가 복지국가민심을 반영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예산안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예산안은 범국민적인 복지국가민심을 반영할 능력과 의지가 없음을 여실히 보여줬으며, 이번 시정연설을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 정책은 척박한 복지 철학을 기반으로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은 채, 복지공약의 후퇴를 넘어 제도의 도입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 공공성이 강화되어야 할 영역을 시장만능, 성장주의에 입각해서 규제완화로 풀어가는 등으로 잘못된 상황인식과 잘못된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2007년 44.6%에서 2010년 47.2%, 2011년 48.6%로 4년만에 4%포인트나 상승했다. 이는 OECD 평균 12.4%(2010년 기준)의 4배 수준이며, OECD 회원국 중 압도적인 1위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노인 절반 정도가 상대적 빈곤에 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구조적이고 만성적인 보육, 의료 등의 불안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지금, 보편적 복지를 위한 국가의 역할 강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그러한 국가책임을 방기한 채, 기초연금 공약을 파기하고 노인빈곤 대책에 역행하고 현행법상의 권리보다도 후퇴된 내용의 기초연금법률안을 제안해 놓고서 혼자만의 행복시대를 외치고 있다. 노인 빈곤, 노후안정 운운하면서 기초연금 후퇴에 대한 대국민 사과가 아닌, 후퇴된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안이 최선의 대안인양 국민을 호도하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국민기만에 가깝다.
 
대통령이 언급한 바와 같이 진정한 국민행복시대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복지공약 이행을 위한 치열한 노력과 세계경제의 침체와 맞물린 세수부족과 이로 인한 재정악화를 반영해 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또한 부자와 대기업에 대한 감세를 전면 철회하고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를 통한 조세정의 실현 후, 필요하다면 보편적 증세를 위한 국민적 동의를 구해 보편적 복지국가의 비전을 확립하고 이에 조응하는 조세와 재정 제도의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서민들의 고통을 직시하고, 의료, 교육 부문의 공공성과 서민을 위한 정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복지국가 공약을 성실히 이행하는 대통령이 될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