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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전쟁 발발 후 첫 유로비전 강행과 이스라엘 본선 진출이 촉발한 유럽 문화계의 지정학적 분열

이겨례 기자
가자 전쟁 발발 후 첫 유로비전 강행과 이스라엘 본선 진출이 촉발한 유럽 문화계의 지정학적 분열
©연합뉴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쟁을 둘러싼 국제적 비난 여론 속에서도 제70회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본선 진출을 확정하며 유럽 내 외교적 균열을 심화시키고 있다. 스페인과 아일랜드 등 주요 5개국은 이스라엘의 참가에 반발해 대회를 전면 보이콧했으며, 참가국 수는 2003년 이후 최저치인 35개국으로 급감했다. 이번 사태는 예술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넘어 유럽방송연합 내부의 결속력을 저해하고 시청률 하락이라는 실질적인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이스라엘 대표 노암 베탄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예선 무대에서 록발라드 곡인 '미셸'을 선보이며 핀란드와 그리스 등과 함께 본선행 티켓을 확보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베탄의 공연 도중 객석 곳곳에서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구호와 함께 거센 야유가 쏟아져 나와 현장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오스트리아 치안 당국은 이스라엘 규탄 시위와 잠재적인 테러 위협에 대비해 행사장 주변에 대규모 경찰력을 배치하며 삼엄한 경계 태세를 유지했다.

유럽방송연합(EBU)이 주관하는 유로비전은 국가 대항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어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문화적 충돌로 번지는 고질적인 취약성을 노출해 왔다. 가자지구 내 인도적 위기가 심화되자 이스라엘 공영방송 칸(Kan)의 회원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여론이 유럽 전역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AP통신은 이번 대회가 단순한 음악 축제를 넘어 중동 분쟁에 대한 유럽 각국의 입장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정치적 시험대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스페인 RTVE와 아일랜드 RTÉ를 포함한 5개국 공영방송사는 이스라엘의 참가를 용인한 주최 측의 결정에 반발하며 이번 대회 불참을 공식 선언했다. 네덜란드의 아브로트로스와 아이슬란드의 RÚV 역시 보이콧 행렬에 동참하며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슬로베니아 RTV는 본선 중계 시간에 이스라엘 가수의 공연 대신 팔레스타인 관련 다큐멘터리를 편성하며 가장 강도 높은 항의 의사를 표명했다.

보이콧 여파는 대회의 양적 규모와 상업적 가치 하락으로 직결되며 주최 측에 상당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올해 참가국은 2003년 이후 23년 만에 가장 적은 35개국에 그쳤으며 이는 대회의 보편적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지난해 약 1억 6,600만 명에 달했던 글로벌 시청자 수는 주요국들의 중계 거부 사태로 인해 올해는 전년 대비 대폭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국가 예산을 투입해 자국 가수의 투표를 독려하고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곡을 선정하는 행위는 대회의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해에는 하마스의 공격에서 생존한 가수를 대표로 내세워 시청자 투표 1위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노암 베탄이 몰표를 호소하는 영상을 올려 주최 측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블룸버그 분석에 의하면 이러한 행태는 유로비전을 국가 이미지 쇄신을 위한 선전 도구로 활용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깔려 있다.

과거 사례에서도 이스라엘은 정치적 중립성 위반 논란으로 주최 측과 마찰을 빚으며 대회 운영의 불확실성을 높인 바 있다. 2024년 대표였던 에덴 골란은 하마스의 기습을 연상시키는 가사로 출전하려다 제재를 받은 끝에 곡의 내용을 대폭 수정한 후에야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대회의 규정을 교묘히 이용해 자국의 정치적 정당성을 홍보하는 행위가 반복되면서 대회의 본질이 퇴색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이스라엘의 최우방국인 독일은 이번 보이콧 움직임을 반유대주의의 발로로 규정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볼프람 바이머 독일 문화장관은 "이번 사안에서 반유대주의가 개입된 정황이 느껴진다"며 빈 현장을 직접 방문해 이스라엘 대표를 격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은 유럽방송연합에 가장 많은 기여금을 내는 이른바 '빅 파이브(Big 5)' 국가 중 하나로 자국 대표 자라 엥겔스를 예선 없이 본선에 진출시키는 등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본선이 개최되는 오는 16일에는 친팔레스타인 단체들이 행사장 인근에서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고 있어 물리적 충돌에 대한 우려가 극에 달하고 있다. "예술은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는 유럽방송연합의 공식 입장은 이스라엘의 참가를 둘러싼 회원국 간의 극심한 내홍 속에서 그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향후 유로비전이 이번 사태로 훼손된 브랜드 가치를 회복하고 유럽 내 문화적 통합을 다시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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