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닥종이 명인 1호 김미숙 작가가 40년간 빚어온 작품 77점 전량을 종이나라박물관에 기증하며 평생의 예술 세계를 사회에 환원하다. 지문이 닳아 없어질 정도의 고행 끝에 완성된 작품들은 한국인의 얼굴을 형상화한 독보적인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이번 기증은 개인의 소유를 넘어 전통문화의 공적 보존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실천한 사례로 기록되다.
대한민국 닥종이 명인 1호 김미숙 작가는 지난달 마지막 전시회를 마친 후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 77점을 종이문화재단 종이나라박물관에 기증하는 결단을 내리다. 79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영감을 사회에 돌려주겠다는 그의 의지는 40년 한길 인생의 고결한 마침표로 해석되다. 이번 기증은 단순히 물적 자산의 이동이 아니라 한 개인의 치열한 예술혼이 담긴 기록물을 공적 자산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작가의 손끝에는 40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나 정작 그의 손가락에서 지문은 찾아볼 수 없다. 닥종이 인형을 빚고 다듬는 과정을 수만 번 반복하는 사이 지문이 완전히 닳아 없어진 탓이다. 이로 인해 미국 입국 심사 시 지문 인식이 되지 않아 곤욕을 치르는 일화는 그의 예술적 집념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히다. 지문은 한번 사라지면 재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음에도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소신을 밝히다.
닥종이 인형 제작은 철사로 뼈대를 세우는 것에서 시작하여 한지를 풀로 붙이고 말리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는 고난도의 작업이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최소 한 달에서 두 달의 시간이 소요되며 이는 기계적 생산이 불가능한 순수 창작의 영역에 해당하다. 김 작가는 견본 없이 직관에 의존하여 인형을 빚어내기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표정과 몸짓이 탄생한다고 설명하다. "찍어내는 게 아니니까 얼굴이 다 같을 수가 없다"는 그의 말은 수작업 예술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함축하다.
제작의 핵심인 얼굴 작업은 한지를 잘게 찢어 이마와 턱, 코 순으로 덧붙이며 형태를 잡아가는 정밀한 공정을 거치다. 얼굴이 완성된 후에야 몸체와 의상 작업이 이어지며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가 종이 위에서 구현되다. 김 작가는 닥종이 인형 속에서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땀 흘리는 농부의 모습 등 잃어버린 한국인의 원형을 발견했다고 회상하다. 인형을 빚는 행위는 작가 자신에게도 참모습을 찾아가는 구도의 과정과 다름없었다는 평가를 받다.
그의 예술 여정은 1984년 미국 이민 초기 독일 작가 김영희의 에세이를 접하며 우연히 시작되다. 당시에는 닥종이 인형을 배울 수 있는 기관이 전무했기에 그는 엽서 속 사진만을 보고 크기를 가늠하며 독학의 길을 걷다. 비싼 한지를 아끼기 위해 아들이 쓰던 컴퓨터 용지 파지로 연습을 반복하던 시절은 그의 손바닥을 굳은살과 상처로 가득 채우다. 덜 마른 종이를 빨리 건조하고자 오븐에 넣고 구웠던 시행착오는 초기 연구의 치열함을 짐작하게 하다.
김 작가의 노력은 1993년 국내 방송 출연을 계기로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 전통 공예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방송 직후 쇄도하는 수강 문의에 그는 자택에서 강습을 시작하며 닥종이 인형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다. 이 과정에서 종이문화재단 노영혜 이사장과 인연을 맺고 전국 지부 사범들을 대상으로 전문 교육을 진행하는 등 체계적인 전수 시스템을 구축하다. 1999년 출간된 국내 최초의 지도사 자격 취득 교재는 현재 절판되어 희귀본으로 남을 만큼 상징성을 지니다.
그는 평생 자신의 작품을 상업적으로 판매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며 예술적 순수성을 지켜오다. 지인들의 요청으로 양도한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면 모든 창작물은 그의 곁을 지키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여러 기관의 기증 요청 중에서도 30년 인연의 종이나라박물관을 선택한 배경에는 전문가에 의한 영구 보존이 필수적이라는 신념이 자리하다. 가족들의 아쉬움 섞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작품이 관람객들과 만날 때 가장 빛난다는 확신을 굽히지 않다.
전통 한지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최근 유통되는 저급한 모조 한지에 대한 쓴소리로 이어지다. 진짜 한지는 닥나무를 삶아 가공하는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하며 일반 종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도와 질감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하다. 과거 일본의 화지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현재는 우리 한지가 유럽 고서 복원 분야 등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 미소를 짓다. 이는 전통 소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예술적 완성도의 근간임을 시사하다.
42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영구 귀국한 명인은 현재 대가 없는 재능 기부를 통해 제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배움을 갈구하는 이들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품 탓에 버지니아 출신 건축 디자이너 등 외국인 제자들까지 그의 문하를 거쳐 가다. 그는 인공지능이 로봇 기술로 형태를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인간의 감정이 묻어나는 표정만큼은 결코 복제할 수 없다고 단언하다. 손끝 예술이 지닌 인문학적 가치는 디지털 시대에 더욱 희소한 경쟁력을 갖게 되다.
일각에서는 원로 예술가들의 기증 작품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수장고에 방치되는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하다. 개인의 선의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박물관의 전문적인 큐레이팅과 국가적 차원의 아카이브 구축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작가의 이번 기증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모범 사례로서 후대 예술가들에게 귀감이 되다. 그는 앞으로도 치매 예방 등 손 작업이 지닌 사회적 효용을 전파하며 기술 나눔을 이어갈 계획이다.
향후 종이나라박물관에 전시될 77점의 작품은 한국 전통 공예의 정수를 알리는 핵심 콘텐츠로 활용될 전망이다. 김 작가는 비록 새로운 작품 제작은 멈추겠다고 선언했으나 그가 남긴 기술과 혼은 제자들의 손끝을 통해 계승될 것으로 보이다. 한국인의 얼굴을 빚어온 40년의 세월은 이제 박물관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영원한 생명력을 얻게 되다.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과 사회적 환원이라는 그의 행보는 우리 문화계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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