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수요 감소와 가격 하락 등으로 반도체 산업이 혹한기에 접어든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들도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 투자 및 신기술 개발에 나선 모습이다.
▲삼성·SK하이닉스, 영업이익 뒷걸음 "내년에도 좋아질 조짐 없어"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장 경계현 사장은 지난 7일 평택 캠퍼스 미디어 투어에서 "반도체 사업이 안 좋다. 올해 하반기도 좋지 않을 것 같고, 내년에도 좋아질 모멘텀은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D램·낸드플래시와 같은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고, 재고도 쌓여가고 있다. 메모리반도체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주력 상품으로, 두 회사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D램의 경우 약 70%, 낸드플래시는 53%에 달한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공급 과잉과 재고 증가로 3분기 소비자용 D램 가격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2분기보다 13∼18% 하락할 것으로 각각 전망한 상태다.
반도체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한 것은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린 탓이다. 우선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PC, 스마트폰, 가전 등 반도체가 들어가는 제품의 수요가 둔화된 영향이 크다. 그동안 D램 가격을 떠받쳐온 서버 수요도 기업들의 비용 절감에 따라 향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미중 분쟁,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한 생산 비용 증가, 부품 병목 현상 등 대외 악재들도 쌓여있다.
이에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세계 반도체 기업들은 수요 둔화에 대비해 강도 높은 재고 조정을 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최근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락의 원인을 대규모 재고 조정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면서 "재고 조정 기간이 최소 2023년 초까지 연장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고 전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IT 내구재 수요 둔화와 재고 조정이 겹쳐서 진행 중"이라며 "경기에 민감한 반도체를 둘러싼 부정적인 변수들만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반도체 업종의 계절적 성수기로 꼽히는 3분기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 것으로 보인다.
연합인포맥스가 최근 3개월간 발표된 증권가의 3분기 실적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는 매출 79조5천883억원, 영업이익 13조3천99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됐다. 작년 동기 대비 매출은 7.58% 늘고, 영업이익은 15.29% 감소한 수치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매출은 13조93억원, 영업이익은 3조216억원으로 전망됐다. 작년 3분기 대비 매출은 10.20% 늘겠지만, 영업이익은 27.57%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반도체 가격이 하락한 반면 비용은 늘어나면서 수익성이 뒷걸음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 "기술·투자로 불황 뚫는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불황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반도체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6.7%가 현재 반도체산업을 위기로 진단했고, 58.6%는 이런 위기가 내후년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최근 반도체 사이클(주기)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만큼 경기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과거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3~4년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왔다. D램 수요가 늘면 업체들이 앞다퉈 설비 증설에 나서고, 이것이 공급 과잉으로 이어지면서 가격이 내려가는 현상이 반복돼 온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빅 사이클'의 주기가 1~2년으로 짧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경 사장은 "경기 사이클이 빨라지면서 불황기에 투자를 적게 한 것이 호황기에는 안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며 "시장의 업앤다운(Up & Down)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꾸준한 투자가 맞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최근 유튜브 '삼프로TV'에 출연해 "기업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시나리오에 맞게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라며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얼마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시설인 평택 캠퍼스 3라인을 본격 가동한 데 이어 평택 4라인 착공을 위한 준비작업에도 착수했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2위인 SK하이닉스는 향후 5년간 15조원을 투자해 충북 청주에 신규 반도체 생산공장인 M15X(eXtension)를 짓기로 했다. 메모리 업황이 2024년부터는 서서히 회복돼 2025년에는 반등할 것으로 보고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신기술 개발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최고속 D램인 HBM3, 최고층 238단 낸드 등 최근 세계 최초 기술을 잇달아 선보였다. 238단 낸드는 최고층이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제품으로 구현된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반도체 수요 둔화 속에 국내 업체들이 차세대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