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 원대 설탕 가격 담합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CJ제일제당과 삼양사 전현직 임직원들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기업 간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가능성을 지적하면서도 국제 원당 가격 등 외부 요인을 고려해 폭리 취득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거대 식품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 남용에 대한 사법부의 엄중한 판단과 동시에 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식품 업계의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는 대형 제당사들이 수조 원대 규모의 가격 담합을 벌인 행위에 대해 사법부가 유죄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류지미 판사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 전 CJ제일제당 식품한국총괄과 최모 전 삼양사 대표에게 각각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 1억 원을 선고하고 형의 집행을 3년간 유예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들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나머지 임직원 9명 역시 징역형의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을 선고받으며 법적 책임을 피하지 못했다.
▲ 시장 지배력 남용과 3조 원대 담합 규모의 실체
이번 사건은 국내 설탕 시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주요 기업들이 조직적으로 가격을 통제해 온 정황이 드러나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CJ제일제당과 삼양사는 2021년 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약 4년의 기간 동안 설탕 가격의 변동 폭과 구체적인 인상 시기를 사전에 합의하여 결정해 왔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담합 규모는 무려 3조 2,715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이는 국내 식품 업계에서 발생한 담합 사건 중에서도 이례적인 규모로 기록되었다.
담합의 영향은 고스란히 시장 가격에 반영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담합이 발생하기 이전 시점과 비교했을 때 설탕 가격은 최고 66.7%가량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탕은 빵, 과자, 음료 등 대부분의 가공식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기초 원자료라는 점에서 이러한 가격 상승은 일반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 재판부 역시 이러한 점을 강조하며 기업 간의 담합 행위가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전가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명시했다.
▲ 재판부의 양형 이유와 폭리 취득 미인정 배경
재판 과정에서는 피고인들이 담합을 통해 실제로 어느 정도의 부당 이득을 취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다. 재판부는 CJ제일제당과 삼양사가 담합을 모의하고 실행했다는 사실 자체는 명백히 인정했으나, 이를 통해 막대한 폭리를 취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는 설탕의 주원료인 국제 원당 가격이 투명하게 공시되고 있다는 점과 환율 변동성, 그리고 대형 수요처들이 보유한 가격 협상력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었다.
특히 재판부는 설탕 제조 원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제 원당 가격의 추이와 당시의 환율 상황을 분석했을 때, 가격 인상 요인이 담합에 의해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또한 기업들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태도와 더불어 각 사 내부에서 준법 교육을 강화하는 등 재발 방지를 위한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양형에 반영했다. 피고인들이 과거 밀가루와 설탕 담합 사건으로 과징금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재범에 이른 점은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으나, 실형 선고 대신 집행유예가 결정된 배경에는 이러한 참작 사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 과징금 처분과 민사 소송으로 번지는 담합 파장
이번 1심 판결에 앞서 행정적 처분도 이미 진행된 상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월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제당 3사가 사업자 간 거래에서 장기간 가격을 담합한 사실을 확인하고 합계 4,083억 1,300만 원 규모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기업의 영업 활동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며, 법인인 CJ제일제당과 삼양사에게도 이번 1심 재판에서 각각 벌금 2억 원이 선고되며 행정적·형사적 책임이 동시에 부과되었다.
사건의 여파는 민사 소송으로까지 확대되며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한 지방제과업체 대표는 제당 3사의 가격 담합으로 인해 경영상의 피해를 입었다며 전날 서울중앙지법에 2,000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담합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가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신호탄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향후 유사한 업종의 중소기업이나 소비자 단체에 의한 추가 소송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번 판결은 식품 업계 전반에 걸쳐 공정 거래 질서 확립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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