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으로 세계 에너지 수송의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의 운항 차질이 장기화하고 있지만, 국제유가는 의외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봉쇄=유가폭등'이라는 기존 공식이 깨지며 '피크 호르무즈' 시대에 접어들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에너지 수송량의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그간 중동 지역 위기 시마다 국제유가 폭등의 방아쇠 역할을 해왔다. 과거 '봉쇄는 곧 유가 폭등'이라는 공식이 시장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2026년 7월 17일, 블룸버그는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정점을 지나 약화하는 '피크 호르무즈' 시대 진입 가능성을 제기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중동 전쟁에서 국제유가가 시장 예상보다 덜 흔들린 현상을 근거로 들었다.
실제로 지난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 이후,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4월 말 장중 126달러대까지 치솟으며 2022년 3월 이후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유가는 점차 하향 안정화되어 최근 80달러 중후반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예상했던 '유가 폭등'과는 거리가 있는 '반전' 흐름이었다.
[사진=연합뉴스]
블룸버그는 이 같은 유가 상승 억제 요인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 첫째, 전쟁 발발 당시 세계 원유 시장은 공급 과잉 상태였다. 둘째, 국제에너지기구(IEA)를 중심으로 전략비축유가 공동 방출되며 공급 불안을 해소했다. 셋째, 주요 원유 소비국인 중국이 대규모 추가 원유 확보 경쟁에 불참한 것도 유가 안정에 기여했다. 넷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송유관을 적극 활용한 점도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호르무즈의 중요성 약화에 대한 신중론도 제기된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7월 16일, '완충 효과는 오래 지속될 수 없으며, 호르무즈 해협의 운항 차질이 수주 이상 이어질 경우 세계 에너지 안보가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피크 호르무즈' 시대 진입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상당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과거보다 약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IEA 사무총장의 경고처럼 그 중요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시적 완충 효과에 기댄 안일한 태도보다는 각국의 대체 수송로 확보, 비축 확대, 공급망 다변화 노력이 미래 에너지 안보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