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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배려없는 한국사회… 복지 체감 못하는 이유

평범한 회사원이던 A씨는 첫 자녀를 임신한 후 고민에 빠졌다. A씨의 직장은 출산과 육아를 위한 휴직제도가 마련돼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평소 아이만은 자신의 손으로 정성껏 키우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어 결국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납부하던 고용보험이 있으니 일단 실업급여를 받으면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실업급여를 받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급여를 받기 위해 A씨는 고용센터에 재취업 활동 확인서를 제출해야 했다. 이는 A씨가 재취업을 위해 구직 및 창업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로, 이 때문에 A씨는 취업 생각이 없는데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기업에 제출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고용센터는 A씨에게 직업훈련을 받도록 '명령'했다. 훈련 내용은 워드프로세서 사용 실기였다. A씨는 주에 3회씩 훈련을 받으러 출석해야 했고 테스트까지 받았다. 정당한 사유 없이 취업알선이나 직업지도, 직업훈련을 거부할 경우 2주에서 1달까지 구직급여가 정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회사를 그만두면 편하게 실업급여를 받으며 태교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임신한 몸으로 마음에도 없는 재취업 활동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게 되어 화가 났다. 하지만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 실업급여의 지급 내용
▲ 실업급여의 지급 내용

◎ 임산부에게 일하라고 압박하는 복지 제도

실업급여는 크게 구직급여와 취업촉진 수당으로 나누어진다. 구직급여는 "근로의 의사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하지 못한 경우에 재취업을 위한 노력(구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것을 요건으로 하여" 지급된다. 그나마도 240일이 한도다.

취업촉진수당은 조기재취업수당·직업능력개발수당·광역구직활동비·이주비 등이다. 이 역시 재취업 교육 수료를 조건으로 지급된다. 광역구직활동비는 고용센터의 소개로 거주지로부터 50㎞가 넘는 지역에서 재취업 활동을 하는 경우에 숙박료와 운임을 지급하며, 이주비는 수급 자격자가 취업 또는 직업능력개발 훈련을 받기 위하여 주거를 이전하는 경우에 지급한다.

이 제도는 재취업 준비자의 취업 의지 고취에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위 A씨의 사례와 같이 당장 재취업을 할 생각이 없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다. 임산부에게도 실업자에게 대한 경제적 안정과 재기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명목 하에 취업교육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저자 J.K 롤링
해리포터 시리즈의 저자 J.K 롤링

 

◎ 두 번째 기회 (Second chance)가 없는 한국 사회

J.K 롤링은 2000년대에 세계에서 가장 극적인 신분상승을 이룬 사람 중 한 명이다. 해리포터 시리즈 1권이 출간한 후 "이제 아이에게 신발을 사줄 수 있어 기쁘다"라고 할 정도로 가난했던 롤링은 10년도 안되어 세계 500위 대의 부자가 되었다.

전설적인 브릿팝 밴드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는 아일랜드 이주민 노동자 계층의 아이로 태어났다. 부모의 불화와 가난 속에서도 형제는 꾸준히 음악을 하며 세계적인 록스타로 성장할 수 있었다.

롤링과 갤러거 형제가 취업을 위해 실업급여를 받으며 집필활동과 작곡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과는 다르게 영국에선 일을 하지 않는 실업자들게도 정부가 돈을 지불한다. 비록 직장이 없고 가난하더라도 살아갈 집이 있고 끼니를 때울 수 있다. 의료비 또한 무료다. 이런 사회 기반은 실패하고 불행한 자들에게 두번째 기회 (Second chance)를 준다.

이러한 복지제도를 발판삼아 롤링과 갤러거 형제는 재기에 성공했으며, 비록 경제적 성공은 얻지 못하더라도 국민들이 인생에 여유를 가지고 하고싶은 일에 도전해볼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어 있다. 국민의 행복한 생활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복지라고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선 문학이나 음악, 미술 등 예술 분야에 도전한다고 하면 "밥은 먹고 살겠냐"는 측은한 질문을 듣게 된다. 예술이 안정적인 소득을 얻기 힘든 직업인 까닭도 있지만, 제도적으로 예술가에 대한 사회보장이 전무하다는 것이 더 큰 이유다. 노동계약 없이 출판 수익이나 전시, 공연활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예술가는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한다. 아직 한국사회에서 인정하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예술'은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 배려없는 한국사회… 복지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

그런점에서 한국 사회는 아직도 '배려'가 부족하다. 그리고 법과 제도 역시 사회의 분위기를 따라가고 있다. 저소득층, 청년층, 노인층, 독신가정, 예술가, 여성, 다문화 가정 등 소수자를 위한다며 이름을 내건 정책은 많지만, 소수자의 특수성을 '배제'해 버리는 법률 때문에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강동구 천호동에 사는 김인숙 할머니의 경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규정상 100만 원에 가까운 지원을 받아야 하지만 정부는 김 할머니의 주민등록이 말소된 탓에 고작 45만 원만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김 할머니가 주민등록을 하려면 그동안 미납한 건강보험료를 완납해야 하기 때문에 재등록을 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위 사례에서 건강보험제도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충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건강보험제도가 사회적 소수자인 저소득 노년층인 김인숙 할머니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제도에 저소득층이나 노년층에 대한 배려만 있었어도 정부의 복지정책은 효과적으로 김 할머니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임산부 A씨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사회복지 지출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비록 총 지출 규모는 아직도 OECD의 절반 수준이지만, 2007년~2012년 기간 동안 사회복지지출 증가율은 약 32%로 OECD 평균 증가율인 13%와 비교해 두 배가 훨씬 넘었다. 하지만 아직도 국민들은 "국가가 해준 게 뭐냐" 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위 같은 이유로 인해 복지정책을 체감하지 못해 조세 저항이 일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