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현정 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인하를 통해 유동성 지원 강화에 나섰지만 시장은 금리인하 자체보다 비전통적인 유동성 공급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금리인하는 이미 예상돼 효과가 반감됐다. 유럽과 미국 등 국제금융시장은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 등의 대책에 반색하기보다는 국채 매입 확대 계획이 없다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발언에 실망하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은행에 대한 장기대출(LTRO) 만기 확대 등의 대책이 장기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고 또 ECB가 긴축 완화로 방향을 완전히 선회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단기적으로는 결국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재정통합에 대해 얼마나 진전된 결과를 도출하느냐에 따라 유럽 재정위기의 향방이 좌우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9일 진단했다.
◇유동성 공급 대책 효과 주목
ECB는 8일(현지시간) 금융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 인하 등 다양한 유동성 대책을 발표했다.
기준금리는 1.25%에서 1.0%로 내리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0.25%포인트 내린 데 이은 2개월 연속 조정으로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이 됐다. ECB는 지난 2009년 5월부터 2011년 4월까지 기준금리 1.0%를 유지했다.
그 외 유동성을 완화해 경기 부양을 돕기 위한 추가 대책도 내놨다.
은행에 대한 장기대출(LTRO)의 만기를 현재 1년에서 3년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ECB 담보로 허용되는 자산담보부증권(ABS)의 등급을 내리고 각국 중앙은행들로부터 은행 대출도 담보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담보요건을 완화했다. 은행 지급준비율은 2%에서 1%로 낮췄다.
ECB의 대책은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를 반영했지만 대부분 예상된 조치라는 점에서 시장의 큰 반향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대신증권[003540] 오승훈 연구원은 "최근 금융시장의 긍정적 반응은 ECB의 과감한 조치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는데 정작 시장이 기대한 재정위기 강화조치는 어떠한 것도 내놓지 않았다. 그만큼 금융시장 불안이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ECB 금리가 2009년이후 최저수준이라는 점과 대출 담보요건 완화 등의 추가 조치는 주목할만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투자증권 유주형 애널리스트는 "금리인하보다 3년 장기대출(LTRO) 도입과 같은 비전통적인 유동성 공급조치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동성 경색이 유럽 금융권을 옥죄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유동성 공급이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채 매입 계획 부재에 실망…가능성은 남아
재정위기 국가들에 대한 국채 확대 매입 계획이 없다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발언은 시장에 악재로 작용했다.
전날 상승세로 출발한 미국과 유럽 증시 주요지수는 드라기 총재의 기자회견 직후 급락세로 돌아섰다.
그는 앞서 유럽 지도자들이 재정통합을 전제로 유로존 재정 위기에 대한 ECB 역할 강화를 시사해 ECB가 위험국 국채 매입을 확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그러나 그는 이날 유로존 정부들과 ECB의 국채 매입 확대에 관한 합의는 없다고 밝혔다.
시장은 예상된 조치인 금리인하와 은행 유동성 강화조치보다는 ECB의 보다 적극적인 국채매입 확대여부에 더 주목했다. 그러나 드라기 총재는 유로존 국채매입 및 구제금융에 대한 ECB의 개입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리투자증권[005940] 박종연 연구원은 "기준금리 인하는 예상된 조치인 반면 ECB의 역할 확대 논의가 없었다는 점에서 유로존 재정위기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드라기 총재의 발언이 ECB의 국채 매입이 일단락됐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키움증권[039490] 전지원 연구원은 "드라기 ECB 총재는 재정통합을 강화할 믿을 만한 계획이 나오면 국채를 추가로 매입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전날 발언은 전제조건이 존재하며 무조건적인 지원으로 해석될 수 있는 오해를 방지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결국 공은 다시 EU 정상회의로 넘어가게 됐다.
전지원 연구원은 "독일의 의도대로 EU조약이 개정되면 세계 주식시장에 반가운 소식이 될 것 "이라며 "그러나 조약을 바꾸지 않고 부속의정서 개정을 제안한 EU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면 단기적으로 불확실성 해소를 위한 진통과정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