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조동일 기자] 원·달러 환율이 1,100원선 밑으로 하락하며 지난해 9월 이후 13개월만에 1,000원대에 진입했다.
지난 23일에는 환율이 개장 직후 1,100.00원까지 내려갔지만 저점 인식 매수물량이 나오며 1,100원선을 가까스로 지켜냈었지만 이번엔 하락 압박을 이겨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의 통화정책 완화와 양호해진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때문에 원화 강세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수출업체 대부분이 1,100원을 목표 환율로 잡았기 때문에 큰 타격이 없겠지만 수출경쟁력 약화 가능성에는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는 전 거래일보다 5.40원 내린 1,098.20원에 장을 마쳤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0.20원 떨어진 1,103.40원에 개장한 직후 하락폭을 넓히며 1,100원대 초반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환율이 종가 기준으로 그동안 지지선 역할을 해온 1,100원선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9월9일(1,077.30원) 이후 13개월여만이다.
지난 5월23일 1,185.50원을 기록하며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운 환율은 1,150원 선에서 등락하다 9월 중순부터 가파르게 하락했으며, 10월 들어서는 연중 최저치를 수차례 갈아치웠다.
특히 이달 11일부터 19일까지 7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보여 1,114.30원에서 1,103.30원까지 떨어졌다.
원화 강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3차 양적완화(QE3)와 유럽중앙은행(ECB)의 단기 국채매입 프로그램(OMT), 일본 중앙은행(BOJ)의 자산매입 등 세계 주요국의 통화정책 완화로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유동성 확대와 이에 따른 위험자산 선호현상, 외국인 자금 유입 증가는 한국 등 아시아 통화 강세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9월 이후 이달 24일까지 원화 가치는 달러화에 비해 2.84% 절상됐다. 싱가포르 달러(2.10%), 말레이시아 링깃(1.90%), 필리핀 페소(1.64%) 등 다른 아시아 통화도 1% 이상 가치가 올랐다.
이런 가운데 이날은 밤사이 발표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제조업구매관리지수(PMI)가 시장의 전망을 밑돌았지만 그리스와 국제채권단 간 긴축시한 연장 소식이 안전자산 선호심리를 제한했다.
앞서 그리스 재무부 관계자는 그리스와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가 긴축 시한을 2년 연장하는 조건으로 135억유로(약 19조원) 규모의 새 긴축안에 사실상 합의했다고 전했다.
환율은 월말을 맞은 수출 업체 네고 물량(달러 매도)과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 참가자들의 매도 물량이 몰리며 장 마감을 앞둔 오후 2시52분께 1,100원선을 하향돌파했다.
심리적 지지선인 1,100원선이 깨지자 환율은 하락 속도를 높여 마감 직전 1,097.70원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수출 업체 네고가 들어와 낙폭이 커졌다. 미국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저금리 기조를 확인한 점, 외환당국이 1,100원선 방어를 위해 적극적인 방어에 나설 가능성은 적다는 기대감이 환율 하락에 일조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화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상수'가 돼 버린 유럽의 불안이 어느 정도 완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다 유로존 재정위기를 바라보는 금융시장의 민감도도 떨어진 상태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구제금융 신청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예상이 시장에 선반영돼 있어 여파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상향조정할 정도로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점과 국내 시중은행들이 넉넉한 외화 유동성을 보유한 점도 웬만한 대외 악재로는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지 않도록 가로막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환율 하락에도 수출업체들이 받을 타격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수출 부문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진데다 환율 변동폭 자체가 크지 않아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 수출업체의 채산성이 악화하는 만큼 환율 추가 하락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대 경제학부 표학길 교수는 "수출 수요가 감소하고 가격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는데, 이런 영향은 시차를 두고 찾아오므로 내년 1분기가 가장 어려울 것이다"며 대응책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당장 수입물가 압력이 경감될 것이므로 일반 국민은 나쁜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영여건이나 가격변수가 수출기업에 비우호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사업계획을 수정하는 등 대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업종인 전자와 완성차 업계의 경우 환율 급락으로 상당한 피해가 우려된다. 또 이미 절반 이상의 수출 기업이 환차손을 입은 상태다.
업계에서도 현대차 그룹이 환율 추가 하락에 대비해 보수적인 경영 계획을 세우겠다고 선언하는 등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는 분위기다.
당국은 아직 환율이 예상치를 넘어설 정도로 급락한 것은 아니라면서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조심스런 입장만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