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방성식 기자] = 이건희(73) 삼성그룹 회장의 건강이 쉽게 완쾌되지 않는 것 같다. 이 회장은 지난 5월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켜 응급치료를 한 뒤 삼성 서울병원에 입원해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삼성 측은 이 회장의 신체기능이 정상적으로 회복해 안정적인 상태에 있다고 밝혔지만 벌써 8개월째 일선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어 이 회장이 은퇴할지에 대한 논의도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의 입원을 계기로 이재용 부회장이 기업경영을 빠르게 승계하고 있다. 삼성 특유의 '시스템 경영' 덕분에 이 회장의 부재에도 경영은 안정적인 편이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세간의 신뢰도는 높지 않다. 2000년 당시 인테넷 비즈니스 사업인 e삼성을 실패한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2010년 이후 삼성의 스마트폰 시장을 애플에 맞먹게 키워낸 뒤 이러한 비판이 많이 불식되긴 했지만, 아직도 '삼성'이란 기업엔 이건희 회장의 영향이 너무나 짙게 남아있어 '황태자'인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의 사령탑을 맡는 것은 이르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 이건희 회장이 다시 경영일선에 복귀하지 않게 된다면 삼성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
이 회장의 입원속보가 들어온지 얼마 후 온라인을 타고 '이건희 사망설'이 돌기도 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당시 삼성 계열사의 주가는 일시적인 급상승을 보였다. 삼성의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경영권 안정화를 위한 배당 확대 등 주주 친화책이 나올 것이란 기대감이 투자자들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2011년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을 때 애플의 주식이 내림세를 보였던 것과는 많이 다른 현상이었다.
애플의 경우 스티븐 잡스의 '화려한 혁신'이 곧 애플의 성장과 결합해 강력한 카리스마를 냈기에, 브랜드와 경영자를 떼어서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잡스만큼의 스타성이 있지는 않다. 경영권을 승계하는 후계구도도 이미 확정적인 상태라 이 회장이 이대로 은퇴해도 삼성이 무너질 정도의 위기로 여기는 시선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후계갈등으로 인한 경영손실이 크지 않을것이란 예측도 이건희 회장의 은퇴설에 힘을 실어준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두 아들이 경영권을 두고 경쟁구도를 벌이는 것과는 달리 삼성가의 자녀들은 서로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모습이 적게 나타나며, 공식행사에서 가족간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삼성 신임임원 만찬 때는 입원한 이 회장을 대신해 오너가 삼 남매가 함께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의 속내는 알 수가 없다. 계속 지휘봉을 손에 쥐고 휘두르고 싶은 것인지, 이제 안락한 노년을 지내고 싶은 것인지는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경영권 승계 시기가 언제가 되든, 이 회장 은퇴 전 이재용 회장의 기업 장악력을 높여야 '제 3세대' 삼성이 안정적인 경영행보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