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들이 대출로 투자나 투기를 많이 한다기보다, 공급 부족과 정책 실패 등으로 주택 가격이 뛰면서 불가피하게 주택 관련 대출액도 늘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대출 규제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치솟은 전셋값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8월 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698조8천149억원으로, 지난해 12월 말(670조1천539억 원)과 비교해 올해 들어 4.28%(28조6천610억원) 늘었다.
연말까지 4개월 남았지만, 증가율이 올해 초 당국이 시중은행들에 제시한 가계대출 관리 목표(5∼6%)에 이미 바짝 다가섰다.
주택담보대출은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4.14%(473조7천849억원→493조4천148억원) 늘었고, 특히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전세자금대출은 14.02%(105조2천127억원→119조9천670억원) 뛰었다.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 증가액(19조6천299억원)은 올해 가계대출 전체 증가액(28조6천610억원)의 68.5%를 차지했고, 특히 전세자금대출 증가분(14조7천543억원)이 51.5%로 절반을 넘었다.
신용대출도 올해 들어 5.42%(7조2천460억원) 늘었지만, 증가 규모는 전세자금의 2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택담보대출, 그중에서도 전세자금대출이 주도하고 있지만, 집값이나 전셋값 상승률과 비교하면 증가율이 특이하게 높은 수준도 아니다.
당국과 한국은행이 위험 선호 현상에 따른 레버리지(차입 투자) 증가, 부동산 등 자산으로의 자금 쏠림 등을 가계대출 증가세의 배경으로 지목하며 강력한 '대출 조이기' 규제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과 비교하면 진단에 큰 차이가 있다.
KB리브부동산'의 통계를 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8월 30일 기준 125.8(2019년 1월 14일 기준 100)로, 작년 12월 28일(110.2)보다 14.15% 올랐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같은 기간 117.3에서 130.9로 11.59% 높아졌다.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도 전국과 서울을 기준으로 작년 말보다 각 8.21%(107.2→116.0), 8.38%(113.3→122.8) 상승했다.
이런 통계를 바탕으로 은행권은 가계대출이 계속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주택 매매·전세 가격 상승을 꼽고 있다.
▲전세대출 막히고 금리 줄줄이 인상…고승범 "실수요자 어려움" 인정
가계대출 증가율 5~6% 관리'라는 획일적 통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치솟은 전셋값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미 NH농협은행은 지난달 24일부터 전세자금 대출을 포함한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아예 막았고, 우리은행도 최근 전세대출 중단했다가 일단 재개했지만 지점·월별 한도를 둬 대출이 쉽지 않은 상태다.
주택 관련 대출 금리도 줄줄이 오르고 있다.
신한은행은 6일부터 전세자금 대출금리를 0.2%포인트씩 더 높이기로 했다. 가산금리를 0.2%포인트 인상하는 것으로, 3일 기준 전세자금 대출금리(2.77%∼3.87%)를 고려하면 다음 주부터 최고 금리가 4%를 웃돌게 된다.
KB국민은행도 앞서 3일 신규 코픽스를 지표금리로 삼는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6개월주기 변동)의 우대금리를 0.15%포인트 낮췄다. 전세자금대출 신규 코픽스 변동금리(6개월주기 변동)의 우대금리도 0.15%포인트 깎였다.
은행권 관계자는 "현재 전세자금대출은 거의 무주택자만 받을 수 있는데, 이 전세자금 대출까지 조일 수 밖에 없도록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압박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이라며 "결국 소비자들은 전세를 포기하고 반전세나 월세를 택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실수요자의 자금 흐름을 막아 거주 이전의 자유와 거주 형태에 대한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지난달 2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총량 규제를 하다 보니 실수요자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처할 수 있을 것으로 저희도 우려하고 있다"며 "전세자금대출과 정책모기지 대출, 집단대출은 실수요 대출인데 사실 최근 많이 늘고 있는 게 이 부분"이라고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