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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140조엔 잠든 가계자산 깨운다 비상장주식 투자 문턱 대폭 완화

재경 외신부 기자
일본 1140조엔 잠든 가계자산 깨운다 비상장주식 투자 문턱 대폭 완화
©연합뉴스

 

일본 금융당국이 1,140조 엔 규모에 달하는 가계 현금 자산을 스타트업 시장으로 유도하기 위해 개인의 비상장주식 투자 요건을 전격 완화한다. 특정 투자자용 종목제도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내년 상반기부터 증권사의 적극적인 투자 권유를 허용하여 인공지능 등 신기술 분야의 자본 공급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일본 금융청은 가계에 묶인 막대한 현금을 스타트업 등 유망 기업의 성장 동력으로 전환하기 위해 비상장주식 거래 관련 규제를 대대적으로 정비한다. 이번 조치는 단순 저축 중심의 일본 가계 자산 구조를 투자 중심으로 재편하여 국가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려는 기시다 내각의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금융당국은 내각부령 개정을 통해 중소기업 임원 등 실질적인 투자 역량을 갖춘 개인들이 비상장주식 시장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할 계획이다.

특정 투자자용 종목제도인 J-Ships의 참가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것이 이번 규제 개혁의 핵심이다. 기존에는 경제학자나 증권 애널리스트 등 전문 직군 중 연 수입 1,000만 엔 이상과 순자산 1억 엔 이상을 동시에 충족해야만 비상장주식 거래가 가능했다. 앞으로는 스타트업 투자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 임원도 투자자 범위에 추가되어 자산가들의 시장 진입이 한층 수월해질 전망이다.

고액 자산가들에 대한 거래 빈도 요건도 현실에 맞게 대폭 수정된다. 순자산 3억 엔 이상을 보유한 투자자가 비상장주식에 투자하기 위해 필요했던 '월평균 4회 이상 및 1년 이상'의 거래 경험 요건은 '연평균 1회 이상'으로 대폭 완화된다. 이는 자산 규모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엄격한 거래 횟수 규정에 묶여 투자가 제한되었던 자산가들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제도 개선에 맞춰 금융상품거래법을 개정해 내년 상반기부터 증권사의 영업 방식에도 변화를 준다. 지금까지 증권사는 비상장주식 투자를 잠재적 투자자에게 먼저 권유하는 것이 엄격히 제한되었으나, 법 개정 이후에는 적극적인 투자 권유가 가능해진다. 제도적 장벽뿐만 아니라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위축되었던 비상장주식 시장의 외연이 실질적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이처럼 파격적인 규제 완화에 나선 배경에는 주요 선진국 대비 현저히 낮은 스타트업 자금 조달 규모가 자리 잡고 있다. 2024년 기준 일본의 GDP 대비 스타트업 자금 조달액 비중은 0.16%로, 0.59%를 기록 중인 미국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블룸버그 분석에 의하면 "일본의 보수적인 자금 흐름이 혁신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병목 현상을 초래해 왔다"며 이번 규제 완화가 자본 시장의 체질 개선을 이끌지 주목된다고 평가했다.

현재 일본 내에서 특정 투자자 요건을 충족하는 인원은 약 3,000명 수준이며 이를 통한 자금 조달액은 1,800억 엔 규모에 머물러 있다. 닛케이는 일본 가계가 보유한 현금자산이 지난해 말 기준 1,140조 엔에 달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중 단 일부라도 비상장 시장으로 유입될 경우 스타트업 생태계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인공지능 및 딥테크 분야 스타트업들에게는 가계 자산이 새로운 '생명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상장 기업에 비해 정보 공개가 불투명한 비상장 주식의 특성상 투자자 보호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비상장 주식 거래 활성화가 자칫 투자 사기나 부실 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시장 전문가들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금융청은 투자자 요건을 완화하면서도 시장 감시 체계를 강화하여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일본 재무성은 인플레이션 우려로 인한 국채 가치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채권 세일즈를 병행한다. 요미우리신문은 재무성이 해외 헤지펀드와 각국 중앙은행, 연기금 등에 일본 국채 정보를 제공하는 홍보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통화 정책의 변화 가능성 속에서 국채 시장의 변동성을 관리하고 안정적인 자금 조달 창구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내년부터는 '개인용 국채 플러스'라는 신규 채권 판매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투자 저변을 더욱 넓힐 계획이다. 이 프로그램은 비상장 기업이나 아파트 관리조합 등 기존에 국채 투자가 활발하지 않았던 주체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가계 자산은 스타트업으로, 법인 및 조합의 자금은 국채 시장으로 유도하여 일본 금융 시장 전반의 자본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계산이다.

결국 이번 정책의 성패는 위험 자산에 대해 극도로 보수적인 일본 개인 투자자들의 인식 변화에 달려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실제 투자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투명한 경영 공시와 수익성 증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본 정부가 1,140조 엔의 거대 자본을 혁신 성장의 엔진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할지 전 세계 금융 시장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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