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중국이 장기간 표류해온 대형 천연가스 프로젝트 논의를 다시 본격화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양국이 육상 에너지 협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20일(현지 시각) CNBC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회담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로는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중국으로 공급하는 ‘시베리아의 힘 2(Power of Siberia 2)’ 가스관 사업이 포함됐다고 전해졌다.
▲ 장기간 지연된 러시아 가스관 사업 재가동 움직임
러시아 크렘린궁 외교정책 보좌관 유리 우샤코프는 회담 전 브리핑에서 “양국 정상 간 해당 프로젝트가 매우 상세하게 논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베리아의 힘 2 프로젝트는 총연장 약 2,600km 규모의 초대형 가스관 사업이다. 러시아 야말 지역 가스를 몽골을 거쳐 중국으로 공급하는 구조이며, 연간 수송 능력은 500억㎥ 수준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중국은 2025년 9월 건설 추진을 위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실제 사업은 가격과 금융 조달 조건, 공급 일정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지연돼 왔다.
▲ 가격 협상 둘러싼 중·러 신경전 지속
가장 큰 쟁점은 가스 가격이었다. 중국은 러시아 국내 판매 가격 수준인 1,000㎥당 120~130달러 안팎의 조건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러시아는 기존 ‘시베리아의 힘 1’ 수준에 가까운 가격 체계를 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에서는 해당 가격이 중국 요구 수준보다 두 배 이상 높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중국은 이미 러시아 에너지의 핵심 구매국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세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 중동 전쟁이 흔든 중국 에너지 안보
이번 협상이 다시 주목받는 배경에는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있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 2월 말 시작된 미·이란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 상태에 들어가면서 중국 에너지 수급에도 직접적인 충격이 발생했다.
중국 원유 수입의 절반가량과 LNG 공급의 약 3분의 1이 차질 위험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상 운송로 의존도를 낮추고 육상 공급망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전략적 필요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러시아 가스관은 해협 봉쇄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우회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했다.
▲ 중국 협상력 여전히 우위 평가
다만 시장에서는 중국이 협상에서 서두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에너지 분석업체 클레퍼(Kpler)의 무유 쉬 선임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중국은 약 12억3천만 배럴 규모의 육상 원유 재고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약 92일치 정제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됐다.
중국의 올해 1~4월 국내 가스 생산량도 전년 대비 2.7% 증가했다. 여기에 중앙아시아 가스관 공급망까지 유지되고 있어 단기간 공급 위기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 유럽 시장 잃은 러시아...중·러 공동의존 심화될 가능성
러시아의 경우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으로의 가스 수출이 사실상 붕괴된 상태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 거두 가즈프롬(Gazprom)의 지난해 출하량은 전년 대비 44% 폭락하며 수십 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한 바 있어,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이 절실한 입장이다.
그러나 '지오폴리틱 전략(Geopolitical Strategy)'의 수석 전략가 마이클 펠러(Michael Feller)는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이 가진 위험성을 경고했다.
가스관의 거대한 규모를 감안할 때 모스크바는 단일 고객인 중국에 지나치게 종속될 위험이 있으며, 베이징 역시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 취약성을 피하는 대신 러시아가 통제하는 에너지에 의존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펠러 전략가는 "이번 계약이 타결된다면 이는 단순한 신뢰를 넘어 양국이 각자 안고 있는 대안보다 상호 의존이 더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하며, "국제사회 관점에서는 중·러 관계의 결속이 한층 더 공고해져 향후 이를 갈라놓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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