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국가 폭력에 짓밟힌 43년의 침묵, 검찰 직권 재기로 재일교포 김병진 씨 최종 무혐의

이겨례 기자
국가 폭력에 짓밟힌 43년의 침묵, 검찰 직권 재기로 재일교포 김병진 씨 최종 무혐의
©연합뉴스

 

1980년대 간첩 혐의로 기소유예 성격의 공소보류 처분을 받았던 재일교포 김병진 씨가 43년 만에 검찰로부터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아 법적 명예를 회복했다. 이번 결정은 수사 기관의 불법 구금과 고문 등 인권 침해 사실을 검찰이 직권으로 인정하고 오류를 바로잡은 국내 첫 사례로 기록되었다. 서울중앙지검은 김 씨의 진정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검토한 결과, 과거 보안사의 위법한 수사 과정을 확인하고 혐의없음 결정을 내렸다.

1980년대 국내 대학 유학 중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은 재일교포 김병진 씨가 43년 만에 법적 멍에를 완전히 벗으며 사법 정의의 실현을 증명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김 씨에 대한 공소보류 처분을 취소하고 최종적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자행된 반인권적 수사 관행에 대해 검찰이 스스로 오류를 인정한 상징적 조치로 평가받으며 법조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 씨는 지난 1983년 11월 재일 대남공작지도원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1976년 한국에 들어와 국가기밀을 수집했다는 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에 송치된 바 있다. 당시 검찰은 김 씨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으나 범행 동기와 정황 등을 참작해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공소보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이 처분은 유죄를 전제로 한 기소유예와 유사한 성격을 지녀 당사자에게는 평생 잠재적 범죄자라는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해 왔다.

이번 무혐의 처분의 핵심 근거는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심각한 인권 침해와 절차적 결함에 근거하여 법적 정당성이 상실되었다는 점에 있다. 당시 민간인 수사권이 전혀 없던 국군보안사령부는 김 씨를 강제로 연행하여 장기간 불법 구금한 상태에서 가혹한 고문을 가하며 허위 자백을 강요했다. 검찰은 이러한 위법 수사로 확보된 진술이나 증거는 헌법상 적법 절차 원칙에 위배되어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하여 과거의 결정을 전격 뒤집었다.

김 씨와 함께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에 넘겨졌던 공범 서 모 씨의 재심 결과도 이번 검찰의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요소로 파악된다. 서 씨는 오랜 법정 공방 끝에 진행된 재심에서 고문에 의한 자백의 임의성을 부정받아 최종 무죄가 확정되었으며, 이는 김 씨에게 적용된 혐의의 기초가 사실상 완전히 붕괴되었음을 의미한다. 검찰은 공범의 무죄 확정 사실과 보안사의 불법 수사 기록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김 씨에 대한 혐의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최종 결론지었다.

국가보안법 제20조에 규정된 공소보류 제도는 피의자에게 자성할 기회를 준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간 권리 구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공소보류 처분을 받은 당사자는 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형사 판결과 달리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경로가 사실상 차단되어 명예 회복이 불가능했다. 김 씨는 이러한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검찰에 직접 공소보류 취소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하며 수십 년간 이어진 고통의 사슬을 끊어내고자 했다.

검찰은 김 씨의 진정을 접수한 뒤 사안의 중대성과 역사적 의미를 고려하여 직권으로 사건을 재기하는 전향적인 행정 조치를 취했다. 별도의 권리 구제 절차가 미비한 상황에서 검찰이 스스로 과거의 잘못된 처분을 바로잡기 위해 사건을 다시 열고 무혐의를 결정한 것은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검찰이 단순한 국가 소추 기관을 넘어 인권 보장의 최후 보루로서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대내외에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처분의 당위성을 설명하며 인권 수호라는 검찰 본연의 가치를 다시 한번 명확히 강조했다. 검찰 측은 "인권 침해 과거사 사건에서 공익의 대표자이자 객관적 법 집행기관으로서 인권 보장 소임을 충실히 수행하겠다"라고 밝히며 이번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러한 발언은 향후 유사한 과거사 사건이나 제도적 미비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검찰이 보다 적극적인 구제 태도를 취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수십 년 전의 수사 결과를 현재의 가치 잣대로 뒤집는 것이 법적 안정성을 저해하거나 과거의 사법 체계를 부정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당시의 엄중한 안보 상황과 실정법 체계 내에서 이루어진 검찰권 행사를 무효화하는 것에 대한 행정적 부담과 논란이 존재한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법치주의의 근간인 적법 절차 원칙이 원천적으로 훼손된 사건에서 국가의 오류를 시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보다 상위의 가치인 실질적 정의 실현에 부합한다는 반론이 압도적이다.

이번 사례는 향후 공소보류 처분으로 인해 법적 구제를 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다른 과거사 피해자들에게 중요한 법적 이정표이자 선례가 될 전망이다. 재심 청구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던 영역에서도 검찰의 직권 재기를 통해 명예 회복의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한국 인권 신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가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침해된 개인의 존엄과 인권은 시간이 아무리 흐르더라도 반드시 국가의 책임 아래 회복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재확인된 셈이다.

김 씨의 무혐의 처분은 단순한 법적 기록의 수정을 넘어 우리 사회가 과거의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성숙한 민주 법치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의 일환이다. 다만 이러한 전향적인 조치가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도록 공소보류 피해자들을 위한 보편적인 구제 절차 마련 등 제도적 보완책에 대한 논의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검찰은 앞으로도 과거사 사건의 진실 규명과 피해자 구제를 위해 보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확립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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