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해외 미국 영사관을 통해 영주권을 신청하는 일부 외국인에게 최대 10만 달러(약 1억4880만 원)의 보증금(Bond) 납부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치는 경제적 자립 능력을 갖춘 이민자만 받아들이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 기조를 반영한 것으로, 시행될 경우 저소득층의 미국 이민 문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 영주권 신청자 대상 최대 10만 달러 보증금 검토
15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와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해외 미국 영사관에서 영주권(그린카드)을 신청하는 일부 이민 비자 신청자에게 최대 10만 달러 규모의 보증금을 요구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 중이며, 보증금 규모는 신청자의 상황에 따라 10만 달러보다 높거나 낮게 책정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무부는 우선 일부 국가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한 뒤 제도의 효과를 검증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시민권 취득 후 반환…경제적 자립 여부 담보
논의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신청자가 보증금을 납부한 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야만 이를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시민권 취득까지는 일반적으로 최소 5년 이상이 소요된다.
이 제도는 영주권자가 미국 입국 후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거나 공공 부담을 초래하는 상황에 대비한 일종의 담보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고 있다.
신청자 본인이 아닌 가족이 대신 보증금을 납부하는 것도 허용하는 방안이 함께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경제적 자립 가능한 이민자만 받아들인다"
토미 피곳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이민을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국무부가 이민 및 국적법상 기존 권한을 활용해 일부 비자 신청자에게 보증금 납부를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신청자의 경제적 능력을 확인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 가족초청 영주권도 영향권
이민 비자는 주로 미국 시민권자의 배우자와 부모, 형제자매 등 가족 초청을 통해 발급된다.
반면 기업 취업이민의 경우 대부분 H-1B 등 취업비자로 먼저 입국한 뒤 미국 내에서 영주권을 신청하는 사례가 많아 직접적인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 국무부는 통상 연간 약 50만 건의 이민 비자를 발급하고 있지만 올해는 그 규모가 크게 감소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 "사실상 돈 있는 사람만 미국 이민 가능"
미국이민변호사협회(AILA)의 샤르바리 달랄-데이니 정부관계 담당 책임자는 고액 보증금이 사실상 저소득층 이민을 차단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보증금 제도의 목적은 특정 유형의 이민자를 배제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이민 시스템이 결국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만 가족과 재회하거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Photo : [EPA/연합뉴스 제공])
▲ 저소득 국가 대상 비자 제한도 지속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초에도 저소득 국가 출신 이민을 제한하기 위해 75개국을 대상으로 이민 비자 심사를 사실상 중단했다.
파키스탄과 나이지리아, 브라질 등 인구가 많은 국가들도 대상에 포함됐으며, 올해 1월부터 해당 국가 국민들은 이민 비자 신청 결과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다만 관광이나 유학 등 비이민 비자는 계속 발급되고 있으며, 보증금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현재의 비자 심사 중단 조치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 트럼프 1기 '공적부조 규정' 연장선
이번 정책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추진됐던 이른바 '공적부조(Public Charge) 규정'의 연장선으로 평가된다.
당시 행정부는 영주권 신청자의 자산 규모와 학력, 영어 능력, 장애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향후 정부 복지에 의존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영주권 취득을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해당 정책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민 자체가 급감하면서 실제 영향은 제한적이었으며,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부활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도 비자 심사 과정에서는 건강 상태와 경제적 자립 능력 등을 더욱 엄격하게 검토하도록 지침이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 관광비자 보증금 시범사업 확대
10만 달러 영주권 보증금 구상은 이미 시행 중인 관광비자 보증금 제도를 확대하는 성격도 갖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해 8월부터 말라위와 잠비아 등 일부 아프리카 국가 관광비자 신청자에게 최대 1만5천 달러의 환급형 보증금을 부과하는 시범사업을 시행해왔다.
비자 소지자가 체류기간을 초과하거나 입국 후 난민 신청 등 다른 체류 자격으로 변경할 경우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도록 설계됐다.
현재 대상 국가는 약 50개국으로 확대됐으며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국무부는 보증금을 납부한 비자 소지자의 약 97%가 체류기간을 초과하지 않았다며 제도가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다만 실제 비자 발급 건수는 크게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향후 비자면제프로그램(VWP) 대상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의 관광비자 신청자에게도 보증금 제도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