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이 약 30년 만에 공동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엔화 매수에 나선 것은 단순히 일본 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과 미국 경제의 이해관계를 동시에 고려한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3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엔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할 경우 미국 국채시장과 금리, 일본의 대미 투자,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연쇄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됐다.
▲ 40년 만의 엔저…미·일 공동 개입 단행
미국과 일본은 최근 외환시장에 공동 개입해 엔화를 매수하며 급격한 엔화 약세를 막는 데 나섰다.
개입 직전 엔화 가치는 달러당 164엔에 근접하며 198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후 공동 개입 효과로 엔화는 달러당 156엔 수준까지 회복했다.
미국이 다른 국가의 통화를 방어하기 위해 직접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미국은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엔화 강세를 지원한 이후 약 30년 만에 다시 일본과 공조에 나섰다.
▲ 미국이 엔화 방어에 나선 배경
이번 개입은 일본 경제 지원을 넘어 미국의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성격도 강했다.
엔화가 급격하게 하락하면 일본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대규모 미국 국채를 매도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미국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미 재정적자와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 불확실성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 금리에 추가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 가운데 하나로, 대규모 매도는 글로벌 채권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 캐리트레이드 청산 우려도 작용
엔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의 대표적인 투자 전략인 캐리트레이드가 급격하게 청산될 가능성도 미국이 우려한 요인으로 꼽혔다.
캐리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 해외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엔화 가치가 급격히 변동하면 투자자들이 동시에 자금을 회수하면서 금융시장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엔화 매도와 캐리트레이드 청산이 세계 금융시장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엔화
▲ 일본의 대미 투자 차질도 부담
엔화 약세는 일본 기업들의 미국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도 이를 예의주시한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 기업들은 양국 무역협정을 기반으로 약 5천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엔화 가치가 크게 떨어질 경우 달러 조달 비용이 증가해 투자 여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제조업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엔화 안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 트럼프, 우방국 환율 방어 적극 지원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환율 정책 기조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르헨티나에 달러 유동성을 지원하고 페소화 방어에도 협력한 데 이어 일본 엔화 안정에도 직접 나섰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미국은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을 지원할 것이며 엔화가 현저하게 저평가될 경우 추가 개입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과거 미국이 외환시장 개입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 미·일 정상 간 협력도 개입 배경
정치적 공조 역시 이번 공동 개입의 배경으로 거론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나에 다카이치 일본 총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의 지원 요청에 응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은 미국에 매우 중요한 동맹국이라며 일본이 도움을 요청했고 미국도 기꺼이 협력했다고 설명했다.
▲ 중동 전쟁·AI 투자 열풍도 엔화 약세 부채질
엔화 약세는 일본 내부 요인뿐 아니라 글로벌 투자 환경 변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인공지능(AI) 산업을 중심으로 미국 자산 선호 현상이 강해지면서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집중됐고, 한국 원화와 인도 루피 등 다른 아시아 통화 역시 약세 압력을 받았다.
여기에 이란과의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의 무역수지가 악화된 점도 엔화 가치 하락을 부추긴 요인으로 지목됐다.
▲ 단독 개입 한계 확인…미국 공조 효과 주목
일본은 올해 4월과 5월 약 7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투입해 엔화 방어에 나섔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최근에도 약 5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개입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역시 50억~100억 달러 규모의 엔화 매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공동 개입에 참여하면서 엔화 약세에 베팅하는 투자 비용이 크게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이번 공동 개입이 과거 일본의 단독 개입보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클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