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경제 제재 완화와 체제 안정을 동시에 노리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외교적 승리를 안겨주지 않으려는 복합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핵 프로그램의 핵심은 유지하면서 경제 숨통을 틔우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지만, 중동 긴장 고조와 미국 내 정치 변수까지 겹치며 협상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26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 정부는 극심한 경제난 해소를 위해 미국과의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핵심 목표는 서방에 동결된 약 1000억 달러 규모 자산 일부를 되찾고 국제 원유 시장 접근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핵 프로그램의 근간을 해체하지 않음으로써 미국이 일방적인 승리를 선언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는 이란 내부 강경파와 보수 진영을 의식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성과를 자신의 외교 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테헤란은 일정 수준 이상의 양보에는 선을 긋고 있다는 평가다.
▲ 군사 충돌에도 협상 유지한 이란
양측은 최근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 충돌까지 벌였지만 협상 테이블은 유지됐다.
미 중부사령부는 이란 혁명수비대 고속정들이 기뢰를 설치하고 있다며 공격을 단행했고, 이란은 미군 항공기에 대응 사격을 가했다. 이후 미국은 이란 내 미사일 발사 기지까지 추가 타격했다.
그럼에도 이란은 협상 중단 대신 대화를 지속하는 방향을 택했다.
이란 협상 대표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는 카타르에 머물며 협상을 이어갔고, 이란 정부는 혁명수비대 사망 사실 공개도 늦추며 협상 동력을 유지하려 했다는 전언이다.
이는 현재 이란 정권이 군사적 자존심보다 경제 안정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 핵 프로그램 놓고 미국·이란 여전히 평행선
핵 프로그램 문제는 협상의 최대 난관으로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말 동안 “협상이 상당 부분 마무리됐다”고 밝혔지만, 미국과 이란은 농축 우라늄 처리 문제 등 핵심 사안에서 여전히 큰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의 “우라늄 전량 미국 인도” 요구에서 한발 물러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독 아래 제3국 이전이나 현지 폐기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일부 진전 가능성도 감지된다.
이는 러시아 이전이나 저농축 전환을 주장해온 이란 입장과 일정 부분 접점을 형성하는 변화로 평가된다.
▲ 이란 내부 강경파 변수 여전
문제는 이란 내부 권력 구조다.
혁명수비대와 강경 보수 세력은 여전히 미국과의 협상 자체에 부정적이다.
혁명수비대 미사일·드론 부문 책임자인 마지드 무사비는 “적과의 협상은 순수한 손실”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중재국들은 특히 강경파가 해상 교란이나 비밀 군사작전을 통해 협상을 방해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위성 자료에서는 혁명수비대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 남부에서 활동하는 장면이 포착됐고, 오만만에서는 유조선 폭발 사고도 발생했다. 서방은 이란 연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제공]
▲ 경제 위기 심화…정권 내부도 위기감
이란이 협상에 적극성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심각한 경제 위기 때문이다.
미국 제재와 전쟁 여파로 에너지 인프라가 타격을 입으면서 연료 배급제까지 시행되고 있고,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생활 수준 악화는 전국적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실용주의 성향 인사들은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재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는 외부 충돌로 인한 민족주의 분위기가 정권 방어막 역할을 하고 있지만, 경제난이 심화되면 민심 이반이 다시 폭발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 트럼프, 중동 외교판 확대 시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협상을 단순한 핵 합의 차원을 넘어 중동 외교 재편 카드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이집트, 터키, 요르단 등이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아브라함 협정’에 참여하길 원한다고 밝혔고, 이란 역시 평화협정 체결 이후 참여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중동 외교 지형 전체를 바꾸려는 구상으로 해석되지만, 카타르와 사우디 등 일부 국가는 내부적으로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가자전쟁 이후 중동 지역에서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한 회의론이 커진 상황이어서 실제 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 협상 성패, 이란 최고권력 승인 여부가 관건
중재국들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이란 최고지도부의 최종 승인 여부다.
새 최고지도자로 지명된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실제 권력 구도와 의사결정 체계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중재국들은 현재 협상안이 온건파 외무라인 의견인지, 아니면 강경 군부와 최고지도부 승인까지 받은 것인지를 확인하려 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국가안보최고회의를 통한 집단 합의 구조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 협상 방향은 향후 최고 권력층 판단에 따라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