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피부과’ 간판의 역설: 강남 37곳 ‘아토피는 못 봐요’ 충격

고진아 기자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피부과' 간판을 단 병원 40곳 중 37곳이 아토피 등 피부 질환 진료를 거부하고 미용 시술만 전문으로 해 환자들의 분통이 터지고 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SNL 코리아'의 한 에피소드는 '간판이 피부과라고 해서 왔는데 지금 아토피 하나 못 봐요? 그러고도 의사야?'라는 대사로 웃음 뒤에 가려진 씁쓸한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이 풍자극은 2026년 현재 대한민국 피부과 의료의 역설적인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강남역 인근 '피부과' 간판을 내건 병원 40곳을 조사한 결과, 37곳이 피부 질환 진료를 일절 하지 않고 점 빼기, 보톡스, 필러 등 비급여 미용 시술만을 전문으로 내세웠다. 나머지 3곳 역시 피부 질환 진료를 보기는 하나, '예약 불가', '2시간 이상 대기' 등 환자 접근성이 극히 떨어지는 데다 간단한 약 처방에 그치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은 경증 피부 질환 환자들에게는 재앙과 다름없다. 직장인 김모(34) 씨는 좁쌀 발진으로 강남의 피부과를 찾았다가 '미용만 전문으로 한다'는 답변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모(42) 씨는 여러 병원을 헤매다 겨우 진료를 봤으나 '좁쌀 발진'이라는 말에 안심하고 약을 바르다 결국 '대상포진'으로 오진 판정을 받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주부 박모(29) 씨는 아이의 아토피 증상으로 동네 피부과를 찾았지만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말만 들었고, 대학병원은 최소 4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마비 상태에 놓여 있었다. 심모(23) 씨 역시 여드름 치료를 위해 여러 피부과를 전전하다 포기했다고 말했다.

‘피부과’ 간판의 역설: 강남 37곳 ‘아토피는 못 봐요’ 충격
[사진=연합뉴스]

피부과 의원들이 미용 시술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지적된다. 2024년 기준 피부과 의원 1개당 평균 건강보험 청구액은 4억2천400만원으로, 정형외과(11억9천600만원) 등 타 진료과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반면 개원 비용은 10억~15억 원 이상으로 막대해, 병원 운영 유지를 위해 수익성이 높은 비급여 미용 시술에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 여기에 일반의들의 대거 피부 미용 시장 진출이 더해져 경쟁이 심화되면서 전문의들조차 미용 시술에 매달리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상은 피부 질환 1차 의료 인프라의 붕괴를 초래하고 있다. 경증 피부 질환자들이 갈 곳을 잃어 결국 대학병원으로 쏠리면서, 대학병원 피부과는 최소 4개월 대기라는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최응호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는 '피부과 간판이 무색하게 피부 질환을 보지 않는 것은 1차 의료 인프라 붕괴를 보여주는 우리의 슬픈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전문의가 아닌 의원이 '피부과' 등 특정 진료과목을 표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제40조 개정을 검토 중이다. 김범준 중앙대 의대 피부과 교수는 '환자들이 간판만 보고 전문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오해하지 않도록 전문의 진료 여부와 일반 질환 진료 가능 여부를 명확히 표기하는 등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피부과' 간판이 피부 질환 진료를 보장하지 않는 혼란스러운 현실은 국민들의 의료 접근권을 침해하고 1차 의료 인프라를 붕괴시키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 검토와 전문가들의 제언이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이어져, 환자들이 필요할 때 적절한 피부 질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본 접근성'이 시급히 확보되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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