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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중동발 고유가 직격탄에 경기 판단 하향… 반도체 호황에도 '완만한 개선'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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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반도체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중동 전쟁에 따른 고유가 여파를 반영해 우리 경제에 대한 판단을 한 달 만에 '경기 회복세'에서 '완만한 개선세'로 낮춰 잡았다. 지난달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53.2% 급증하고 소비자심리지수가 106.1로 반등하는 등 긍정적 신호가 포착됐으나, 생산자물가가 1998년 이후 최고 수준인 2.5%까지 치솟으며 경기 하방 위험이 가시화되는 양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 대외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암초를 만나면서 경기 판단을 한 달 만에 '완만한 개선세'로 되돌렸다. KDI는 8일 발표한 '경제동향 6월호'를 통해 최근 우리 경제가 반도체 호황을 중심으로 완만한 개선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중동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경기 하방 위험이 실물 지표에 투영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유지해온 '완만한 경기 개선'이라는 표현을 지난달 '경기 회복세'로 상향 조정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신중론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는 수출 전선의 온기가 내수와 생산 전반으로 확산되는 속도가 대외 변수에 의해 제약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수출 부문은 반도체와 컴퓨터를 필두로 기록적인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견고히 수행하고 있다.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53.2%라는 폭발적인 증가율을 기록하며 반도체 중심의 경기 주도 흐름을 재확인시켰다. 4월 전산업생산 역시 서비스업과 광공업 생산이 동반 상승하며 전월 대비 2.4% 증가해 생산 측면의 견조한 흐름을 뒷받침했다. 서비스업 생산은 금융 및 보험업이 5.5% 성장한 데 힘입어 3.5% 늘었으며, 광공업 생산도 반도체 분야의 13.0% 호조에 힘입어 1.5%의 성장세를 나타냈다.

소비 시장은 소매 판매 증가 폭이 다소 축소되었으나 심리 지표의 반등을 통해 완만한 개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4월 소매판매액은 1.6% 증가하며 전월의 5.0% 대비 증가세가 둔화되었으나, 소비 지표의 흐름 자체는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KDI의 분석이다. 특히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는 전월 99.2에서 106.1로 크게 반등하며 향후 소비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정부가 4월 말부터 지급한 고유가 피해 지원금 효과가 본격화될 경우 내수 소비의 하방 경직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동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 충격은 석유 관련 산업의 생산 차질과 비용 상승이라는 이중고를 야기하고 있다. KDI는 "중동 전쟁으로 인한 원유 수송 차질이 지속되면서 경기 하방 위험이 상존하고 있으며, 그 부정적 영향이 일부 지표에서 가시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원유 수급에 민감한 석유정제 생산은 전년 대비 20.5% 급감하며 대외 리스크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러한 생산 차질은 단순히 개별 산업의 문제를 넘어 국내 공급망 전반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물가 지표는 고유가 여파가 서비스 가격으로 전이되면서 가계와 기업 모두에게 상당한 압박 요인으로 부상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를 기록하며 전월의 2.6%를 상회했고, 근원물가 상승률 또한 2.2%에서 2.5%로 확대되었다. 고유가가 항공료 등 유가 의존도가 높은 품목의 가격 상승을 유도하며 전반적인 물가 상방 압력을 높인 결과다. 특히 4월 생산자물가는 2.5% 상승하며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는 향후 소비자물가로의 추가 전이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대외 리스크에 따른 불확실성이 증대됨에 따라 시장 질서의 안정과 비용 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적 기조 유지가 긴요해진 시점이다. 생산자물가가 8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기업의 비용 부담은 결국 투자 위축과 고용 시장의 경색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KDI는 현재의 경제 상황에 대해 "반도체 호황이라는 긍정적 요인과 중동 전쟁이라는 부정적 요인이 교차하며 개선세가 완만해지는 국면"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수출 호조가 내수 부진을 완전히 상쇄하지 못하는 불균형적 회복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음을 경계하는 목소리다.

일각에서는 KDI의 이번 판단 하향이 지나치게 대외 변수에 매몰된 결과라는 비판적 시각을 제기하기도 한다. 반도체 수출의 압도적인 성장세와 소비자 심리의 반등을 고려할 때, 특정 산업의 생산 감소나 일시적인 물가 상승을 근거로 경기 회복의 흐름 자체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성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지정학적 리스크가 실물 경제 지표인 석유정제 생산과 물가에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경기 진단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향후 한국 경제는 중동 리스크의 전개 방향과 그에 따른 에너지 가격 안정 여부에 따라 회복의 질과 속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고물가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되면서 내수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와 통화 당국은 반도체 중심의 수출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대외 충격이 국내 물가와 민생 경제로 전이되는 경로를 차단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기능을 존중하되, 공급망 교란과 같은 비시장적 변수에 대해서는 선제적이고 단호한 대응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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