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 시각)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즈(IBT)에 따르면 미국 하원은 22일 워싱턴에서 950억달러 규모의 지출안 추진을 승인했다.
표결에서는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이 찬성했고 민주당의 지지는 거의 없었다.
이번 표결은 950억달러를 즉시 집행하는 최종 법안이 아니라, 관련 상임위원회가 분야별 세부 지출 법안을 작성하도록 지시하는 첫 단계였다.
공화당은 국제 분쟁 대응과 국내 정치 공약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한 입법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 국방부에 600억달러…이란 전쟁 비용 집중
전체 예산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인 600억달러는 국방부에 배정됐다.
해당 예산은 주로 이란 전쟁 수행과 관련된 군사비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여기에 보다 폭넓은 국가안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130억달러도 별도로 포함됐다.
공화당은 이란과의 군사 충돌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기존 국방예산만으로는 작전 수행과 병력·장비 보강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 농업 지원 120억달러·선거제도 개편 100억달러
패키지에는 농업 부문과 농민 지원을 위한 120억달러도 포함됐다.
전쟁 예산 중심의 법안이라는 비판을 완화하고 지역구 농민들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정치적 고려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또 다른 핵심 항목은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100억달러였다.
해당 예산은 대통령이 추진하는 ‘SAVE America Act’와 연계돼 투표 시 시민권 증명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뒷받침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었다.
▲ 전쟁 예산과 선거법을 한 패키지에 결합
이번 법안의 가장 큰 특징은 대외 군사비와 국내 선거제도 개편을 하나의 패키지에 묶었다는 점이었다.
이란 전쟁 예산은 국가안보 논리를 앞세울 수 있고, 선거법 개편은 공화당 핵심 지지층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었다.
농업 지원까지 포함하면서 공화당은 안보와 선거, 지역경제라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하나의 법안에 결합했다.
다만 성격이 다른 정책을 대형 지출안에 함께 담으면서 정책적 일관성보다 정치적 거래에 무게를 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 예산조정 절차로 상원 필리버스터 우회
공화당 지도부는 이번 지출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예산조정 절차를 활용했다.
예산조정은 세입과 지출에 직접 영향을 주는 법안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한 절차였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를 우회할 수 있어 가결에 필요한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일반 법안은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를 종결하기 위해 60표가 필요하지만, 예산조정 법안은 단순 과반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공화당은 상원에서 의석 여유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협조 없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이 절차를 선택했다.
▲ 이민·감세·복지 축소에도 활용
공화당은 현 의회에서 이미 예산조정 절차를 여러 차례 활용했다.
이민 단속 예산 확대와 대통령의 감세·지출 정책, 사회복지 프로그램 축소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이번에도 군사비와 선거법 개편 예산을 재정정책으로 분류해 예산조정 대상에 포함하려는 전략을 택했다.
다만 선거제도 개편 조항이 예산조정의 적용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놓고 향후 의회 절차상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 존슨 의장 “선거의 해에도 주요 입법 가능”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선거를 앞둔 해에는 대형 법안을 처리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일축했다.
존슨 의장은 기자들에게 “선거의 해에는 주요 입법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이번 주 우리가 그것이 틀렸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화당이 국민에게 약속한 정책을 계속 이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을 연말과 다음 의회까지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번 지출안을 단순한 전쟁 예산이 아니라 공화당의 입법 성과를 보여주는 대표 정책으로 활용하려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 9월 11일까지 세부 법안 마련
이번 표결 이후 하원 운영위원회와 군사위원회, 농업위원회, 정보위원회가 세부 법안을 작성하게 됐다.
각 위원회는 950억달러가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지를 규정해야 했다.
하원은 관련 위원회에 9월 11일까지 법안 초안을 완성하도록 지시했다.
세부 법안이 마련되면 각 상임위원회와 하원 전체회의의 승인을 다시 받아야 했다.
이후 상원에서도 별도의 입법 절차를 거친 뒤 양원 법안을 조정해야 최종안이 대통령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 최종 법제화까지 여러 관문
이번 표결은 법안 통과의 출발점에 불과했다.
상임위원회의 세부 설계 과정에서 예산 규모와 사용처를 둘러싼 공화당 내부 이견이 표면화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원 전체회의에서 개별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상원이 동일한 내용을 승인할지는 불확실했다.
하원과 상원의 법안이 다를 경우 양원 협의를 통해 단일안을 마련해야 했고, 이후 대통령의 서명까지 받아야 법률로 효력이 발생했다.
따라서 이번 950억달러 계획이 실제 집행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 의회 휴회로 촉박한 일정
입법 일정도 매우 빠듯했다.
하원은 23일부터 5주간 휴회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상원 역시 휴회 전 본회의 일정이 2주밖에 남지 않았다.
상·하원은 10월에도 의원들의 재선 캠페인으로 추가 5주간 워싱턴을 떠날 예정이었다.
선거를 앞둔 의회 일정이 사실상 중단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공화당이 가을 안에 세부 법안을 처리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 선거법 개편이 최대 정치 쟁점
이번 패키지에서 가장 큰 국내 정치 쟁점은 시민권 증명 의무화였다.
공화당은 선거의 신뢰성과 투표 자격 확인을 강화하기 위해 시민권 증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해당 제도가 합법적인 유권자의 투표 참여를 어렵게 만들고 저소득층과 고령층, 소수계 유권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 100억달러 규모의 제도 개편 예산을 포함한 것은 향후 선거 규칙을 둘러싼 여야 갈등을 더욱 격화할 가능성이 있었다.

미 하원 공화당 의원들(Photo :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 공화당의 초박빙 의석이 최대 변수
공화당은 상·하원 모두에서 근소한 다수만 확보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소수의 이탈표만 발생해도 법안 통과가 무산될 수 있었다.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은 전쟁 예산 규모와 선거법 개편 조항을 하나의 법안에 포함하는 방식에 아직 확신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원에서는 당 지도부가 결집을 이끌어냈지만 상원에서는 지역구 이해관계와 재정 보수주의, 전쟁 장기화 우려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었다.
▲ 전쟁비용 확대에 대한 부담도 증가
600억달러 규모의 대이란 전쟁 예산은 전쟁 장기화에 대한 미국 내 우려를 다시 부각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안보 위기 대응을 위해 불가피한 지출이라고 주장했지만, 추가 군사비 투입이 명확한 종전 전략 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국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전쟁 비용을 추가로 승인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둘러싼 논쟁이 커질 가능성이 있었다.
전쟁의 목표와 기간, 비용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공화당 내부에서도 반대가 확산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 정책보다 선거전략 성격 강해
이번 패키지는 정책 집행 계획인 동시에 선거를 앞둔 공화당의 정치 전략이라는 성격도 강했다.
이란 전쟁 지원은 안보를 중시하는 유권자를 겨냥했고, 시민권 증명 의무화는 선거 공정성을 강조하는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노렸다.
농업 지원은 농촌 지역구 의원들의 찬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했다.
공화당이 서로 다른 정책을 묶은 것은 법안 통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하나의 쟁점이 흔들릴 경우 전체 패키지가 무산될 위험도 키웠다.
950억달러 지출안의 최종 운명은 가을 의회에서 결정될 전망이었다.
위원회들이 기한 내 세부 법안을 완성하고 공화당 지도부가 당내 이견을 정리하면 예산조정 절차를 통해 빠르게 처리할 가능성도 있다.
반면 휴회와 선거운동 일정이 겹치고 상원 공화당 내 반대가 커질 경우 법안은 장기간 표류할 수 있다.
결국 이번 표결은 이란 전쟁과 선거법 개편을 동시에 밀어붙이려는 공화당의 의지를 보여줬지만, 실제 법제화 여부는 초박빙 의석과 촉박한 정치 일정에 달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