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혹한의 겨울이 지나고 찾아온 3월… 전문가들은 무슨 책 읽을까?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2010년도‘3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메두사의 시선’(김용석, 푸른숲) 등 분야별 도서 10종을 선정했다.

신화, 과학, 철학의 삼각관계의 미묘함을 명쾌하게 소개한 ‘메두사의 시선’(김용석, 푸른숲)을 비롯해, 최승자 시인의 오랜 투병 생활에서 기인한 사유와 관조가 돋보이는 ‘쓸쓸해서 머나먼’(최승자, 문학과지성사), 글로벌 시대에 맞는 국제적 감각을 갖추기 위한 전략을 소개한 ‘문화적 혼혈인간’(박희권, 생각의나무), 우아한 아이디어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주목하고 우아함의 본질을 탐색하는 경영서 ‘우아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지배한다’(매튜 메이/ 박세연, 살림Biz) 등이다.

위원회는 문학, 역사, 아동 등 10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좋은책선정위원회를 두고, 독서 문화의 저변 확대와 양서권장을 위해 매달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선정하고 있다. ‘3월의 읽을 만한 책’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 메두사의 시선

▲ 출판사 푸른숲│저자 김용석│15,000원
▲ 출판사 푸른숲│저자 김용석│15,000원

화살을 한 방 맞은 아폴론은 다프네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화살을 갖고 놀고 있는 꼬마 신 에로스를 놀린 대가로 치르게 되는 결과다.

아테나 여신보다 더 자수를 잘 놓는다고 큰소리치던 아라크네는 결국 거미로 변해서 평생 살아가는 저주를 받게 된다. 그나마 목숨을 그렇게라도 보존하게 된 것은 아테나 여신의 가호가 있어서였다.

이렇듯 그리스신화는 이 세상 모든 일들을 신과 인간들의 감정적 권력관계 속에서 바라보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건은 결국 의인화된 존재들의 관점에서 재해석된다. 신화가 보여주는 세계는 현대 과학적 자연관이 뿌리내리기 이전 고대인들의 상상력에 기초한 그림이 어떠한가를 잘 보여준다.

과학은 사건과 사건 사이의 인과적 관계의 배후에 있는 자연법칙을 발견해내려고 하는 지적인 노력이다.

인간적 주관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제 3자적 객관적 시각에서 세계의 이치를 밝히려는 것이 과학자의 임무이다. 메두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과학이다.

그렇다면, 지혜를 사랑한다는 철학자의 작업은 무엇인가? 필로소피아, 애지(愛知), 철학은 지식을 아는 것도 아니고, 지식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지식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식과 지혜를 끊임없이 탐구하고자 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과학도 신화도 철학적 탐구 대상이 된다. 철학은 과학과 신화가 전제로 하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이성의 비판 없이 당연시하지 않는다. 연세대학교 김형철 철학과 교수가 추천했다.

◆ 쓸쓸해서 머나먼

▲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저자 최승자│7000원
▲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저자 최승자│7000원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의 시인 최승자가 11년 만에 ‘쓸쓸해서 머나먼’을 출간했다.

최승자라는 이름 자체가 뜨거움과 새로움의 상징이었던 때로부터 세월은 무수하게 흘렀다. 최승자의 시로 상징되는 ‘시’란 이런 것이다 라는 룰이 거침없이 깨져 나가는 통쾌함, 억압된 모든 현실들을 격렬한 자기 부정과 자기혐오의 독백으로 이어지던 파멸의 언어들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쓸쓸해서 머나먼’은 적요한 밥상 앞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시집이다. 비명에 가까운 모멸이 사라진 자리에 깃든 쓸쓸한 평화가 이 시집이 지니고 있는 생기이다.
 
말하지 않아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나무들 사이에 풀이 있듯/ 숲 사이에 오솔길이 있듯// 중요한 것은 삶이었다./ 죽음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 거꾸로도 참이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中에서-

아름답게 번득였고 남김없이 부서졌기 때문에 이 시집의 시들 속에 찾아온 작은 평화들은 깊고도 찬란하다.

11년 동안 병상생활을 하는 와중에 시인이 한걸음씩 찾아낸 이 아득하고 먼 세계. 회복기 환자가 매끼 지어 먹는 것 같은 흰죽 같은 시편들이 쓰러지려는 마음들을 위로한다. 혹한의 겨울이 지나고 봄빛이 가만가만히 찾아오는 3월 같은 시집이다. 신경숙 작가가 추천했다.

◆ 문화적 혼혈인간

▲ 출판사 TB(생각의나무)│저자 박희권│13,500원
▲ 출판사 TB(생각의나무)│저자 박희권│13,500원

“고대 로마 1000년 영광은 개방성과 유연함이다. 아테네는 시민권을 극도로 제한한 나머지 아리스토텔레스마저 마케도니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아테네 시민이 되지 못했다. 이에 비해 로마는 식민지 사람들도 군복무를 마치면 시민권을 부여했다”

“영국인은 상대방과 대화할 때 팔 하나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해야 안정감을 느끼는 반면 중동이나 중남미 국가들은 팔의 절반, 즉 팔꿈치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친밀감을 느낀다”

오랜 기간 직업외교관으로 세계무대를 경험한 저자가 젊은이들을 상대로 글로벌 시대의 성공전략을 제시한 책이다.

국제사회의 명품인간은 문화의 다양성과 상대성을 수혈한 ‘문화적 혼혈인간’이라는 주장이 핵심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횡보를 계속하는 것은 ‘열린 문화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성공한 나라와 실패한 나라를 비교하면 ‘문화’를 보는 태도의 차이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땅을 파는 농부와 여러 동네를 오가는 장사꾼의 생각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로마와 몽골, 영국이 세계를 경영한 공통점은 문화 간 융합과 소통을 추구한 정책에 있다고 말한다. 영국이 과거의 속령들과 더불어 지금까지 영연방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 역시 자치를 통한 교류협력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그가 젊은이들의 글로벌 하이브리드를 실현하기 위해 내놓은 10가지 조건은 이렇다.

생존의 무기인 외국어 구사능력, 국제규범을 지키는 에티켓,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개성, 시민의 권리와 의무에 충실한 법치의식, 국가 경쟁력의 원천인 정직, 트렌드를 읽고 시장을 예측하는 전문성, 품위있는 음주습관, 지성미 넘치는 유머감각, 협상능력, 이성과 감성의 조화….

물론 저자는 미래를 낙관한다. 서양의 사우나에 온돌문화를 융합해 종합휴식센터로 만든 찜질방이나, 지구적 표준에 우리 문화의 독창성이 결합한 비빔밥을 예로 들며 이러한 창의력이 치열한 국제환경을 돌파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선진국 진입을 위한 거대담론 외에 젊은이의 사고를 키우는 지구본 선물하기, 위대한 한국인 명예의 전당 설립 등 구체적이면서도 실천 가능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손수호 국민일보 논설위원이 추천했다.

◆ 우아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 출판사 살림Biz│저자 매튜 메이/ 박세연│15,000원
▲ 출판사 살림Biz│저자 매튜 메이/ 박세연│15,000원

사람들은 왜 아이폰에 열광하는가? 이 책의 저자인 메이는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의 열쇠가 아이폰이 갖는 우아함에 있다고 본다. 우아함이야말로 히트상품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는 것이다. ‘우아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책 제목이 바로 그 생각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저자는 우아함이 반드시 마케팅의 측면뿐 아니라 우리 삶 전반에 걸쳐 매우 큰 중요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아함의 조건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컴퓨터공학의 아버지로 추앙 받고 있는 크누스(D. Knuth)의 말을 인용해 우아함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아함이란 대칭적이면서, 인상적이고, 여백을 지닌, 즉 처럼 간결하면서도 불멸의 고리를 간직한 존재를 뜻한다”

저자는 여백과 생략이 대칭성 못지않게 중요한 우아함의 요인이라고 말한다. 우리 산수화의 여백과 생략이야말로 우아함의 극치가 아닐까?

번역자는 이 책을 어떤 범주로 분류해야 할지에 대해 고심했다고 고백한다. 경영서가 될 수도 있겠고, 실용서도 될 수 있는가 하면, 철학서도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런 고민을 할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MBA 출신이고 마케팅 얘기를 많이 하는 것을 보면 경영서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영서라고 말하기에는 우리 삶의 일반에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 너무나 크다.

이런 애매모호함이 오히려 책 읽는 즐거움을 더 크게 만들어 주고 있다. 순수한 경영서라면 그쪽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도 즐겁게 읽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아함 그 자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전공과 직업에 관계없이 모두가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이 책을 썼다. 이 책을 읽고 우아함을 갖추는 요령까지 배울 수 있다면 이는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서울대학교 이준구 경제학부 교수가 추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