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삼성그룹이 삼성물산의 해외 현지법인을 통해 막대한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삼성특검 당시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 中)
2004년 8월 삼성물산의 카작무스 지분 24.77% 매각과 관련, 그간 삼성그룹의 해외 비자금 조성에 대한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최근 대기업들의 '조세피난처'(조세도피처) 논란과 함께, 이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9일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카작무스 지분 헐값매각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 등 삼성물산 전직 임원과 당시 매각 당사자인 Perry Partners의 100% 소유자로 알려진 차용규를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로, 차용규에 대해서는 특가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하기도 했다.
◆ 카작무스 지분 매각, 무엇이 문제였나
삼성물산은 1995년 6월부터 2000년 6월까지 5년간 카자흐스탄 동광산 및 제련업체인 카작무스를 위탁경영했으며, 100% 자회사인 삼성홍콩과 함께 카작무스 지분을 매입해 2000년 7월 기준 42.55%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이후 삼성물산은 보유하고 있던 카작무스 지분을 세 차례에 걸쳐 매각했는데, 2001년 1월에 15%의 지분을 매각해 784억원의 투자자산처분 이익을 남겼고, 2003년 9월 2.78% 매각한 후 2004년 8월 16일 보유지분 전부(24.77%)를 2003년 말 기준 주당 순자산가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인 주당 1만9051원에 차용규가 100% 소유한 Perry Partners에 전량 처분해 삼성물산 스스로도 1404억여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매각 두 달 전인 2004년 6월 1일 카작무스는 런던시장에 상장할 계획임을 밝혔고, 당시 삼성물산이 카작무스 지분을 급박하게 처분해야 하는 사정이 있었던 것도 아닌 것으로 확인돼, 매각 결정에 의혹이 제기됐다. 더욱이 매각 이듬해에 카작무스는 런던증시에 상장됐고, 상장 후 차용규는 카작무스 지분을 모두 처분해 약 1조2000억원대에 이르는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과 삼성홍콩이 보유하던 카작무스 지분을 매각함에 있어 당시 카작무스가 생산하는 구리의 국제가격이 현저한 상승세에 있어 향후 높은 수익이 분명히 예상되고 있었으며, 카작무스의 영업이익 등 사업성도 갈수록 호전되고 있었다. 더욱이 카작무스 지분을 전량 매각하기 불과 2달 전인 2004년 6월1일 카작무스는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할 계획을 발표하고, 한 달 후 영국에 지주회사인 KCC International(Kazakhmys PLC)를 설립하는 등 상장이 가시화되고 있었다.
이에 카작무스 주식이 상장될 경우 엄청난 차익실현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2004년 8월 16일 차용규가 100% 보유한 Perry Partners에 삼성물산은 카작무스 지분 9.29%(장부가액 약 616억원)를 3749만 달러에, 삼성홍콩은 카작무스 지분 15.487%(장부가액 약 1896억원)를 6250만 달러에 각각 매각했다. 이로 인해 삼성물산은 212억원의 손실을, 삼성홍콩은 1191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각각 공시했다. 한편 삼성홍콩은 삼성물산의 100% 자회사이므로 회계상 지분법적으로 삼성홍콩의 손실은 삼성물산의 손실로 인식된다.
삼성물산은 카작무스 지분 매각으로 입은 손실을 총 1,404억원으로 공시했지만 이는 장부가액 기준이고, 이를 순자산가치 기준으로 산정하면 그 손실액은 1859억원이 된다. 이는 당시 카작무스 주당 순자산가치 4만9617원에서 매각금액 1만9051원을 빼고 주식 수인 608만3610을 곱한 것이다.
또 카작무스가 2005년 10월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하기 직전 1:25로 주식분할했고 공모가가 9972원임을 감안할 때 주식분할 전 카작무스의 주당 가치는 24만9300원이었고, 이러한 공모가 기준으로 손해액을 환산하면 1조4007억원이 된다. 즉, 매각 당시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삼성물산이 카작무스 지분을 매도함으로써 입은 손해는 최소 1859억원이라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손실액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삼성물산은 경영상태가 양호한 편이어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카작무스 지분을 매각하지 않으면 안 될 급박한 사정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삼성물산은 대한광업진흥공사(이하 광진공)로부터 9차례에 걸쳐 합계 약 1044억원을 융자받아서 카작무스에 투자했는데, 광진공과 맺은 해외융자약정서에 따르면 삼성물산이 보유한 카작무스 지분을 매각하는 경우 광진공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승인을 받지 않았고, 광진공 또는 국내 다른 기업체에 카작무스 인수 의사를 타진해 보는 것이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인수 의사 타진도 하지 않았다. 특히, 삼성물산은 카작무스 지분을 매각함에 있어서 적정한 가액이 얼마인지에 대한 외부기관의 평가를 받은 사실도 없다.
◆ 차용규와 이건희 회장의 관계는
차용규는 과거 삼성물산 카자흐스탄 지점에서 근무하다가 카작무스 대표이사를 지낸 자로, 차용규가 100% 지분을 보유한 Perry Partners를 통해 삼성물산과 삼성홍콩이 보유하고 있던 카작무스 지분 전부(24.77%)를 인수했다.
약 1년 후 카작무스가 런던 증시에 상장되어 약 1조2000억원을 벌어 일명 '카자흐스탄 구리왕'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차용규 소유의 Perry Partners는 최근 역외탈세 논란을 빚고 있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소재 회사다.
차용규는 2007년과 2008년 연속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자 순위에 오르는 등 막대한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고, 2011년 12월 국세청은 차용규에게 역외탈세 혐의로 세무조사를 벌여 1600억원을 추징 통보했다. 이와 관련, 국세청은 차용규가 카작무스를 위탁경영하다가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소득신고를 하지 않은 금액이 3400~4000억원에 이른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2012년 1월 차용규가 국세청에 과세전적부심사를 청구한 것이 받아들여졌는데, 차용규의 국내 거주기간을 이유로 소득세법상 '거주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차용규가 서울 여의도에 본인 명의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점 ▲본인 명의로 벤츠 차량을 소유하고 있는 점 ▲차용규의 처가 서울 강남에 거주하고 있는 점 ▲본인 명의의 부동산에 어머니와 동생이 거주하고 있는 점 ▲차용규가 대표적인 조세피난처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적을 둔 월드와이드리미티드 등 6개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국내에 10개 이상의 대형 부동산을 매수하고 관리하는 방법으로 자산을 보유하고 경제생활을 하고 있는 점 ▲위 페이퍼컴퍼니들은 모두 차용규의 누나, 동생, 이종사촌 등이 대표나 임원으로 되어 있는 점 ▲차용규가 국내에 들어와서 직접 위 부동산들을 관리한 점 ▲차용규가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적을 둔 1만 달러짜리 회사인 JJ인베스트먼트리미티드를 통해 다수의 코스닥 상장기업의 주식연계채권에 상당기간 투자한 점 등을 종합하면, 상기 과세적부심사위원회의 판단을 수용하기는 어렵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소득세법상 주소는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으로 국내에서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 및 국내에 소재하는 자산의 유무 등 생활관계의 객관적 사실에 따라 판정해야 하는데, 이 경우 차용규는 명백히 납세의무를 부담하는 '거주자'에 해당한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용규가 과세관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나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에 적을 둔 페이퍼컴퍼니들을 이용해 차용규가 오너인 사실을 은폐하고, 과세당국의 추적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 직업과 소득이 없는 것처럼 가장해 사기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최소한 1600억원의 조세를 포탈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한편, 삼성그룹은 과거 상장 직전의 비상장계열사 주식을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과 주요 임원에게 인수하게 했다가 상장 후 막대한 차익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부를 증식한 사례가 많았다.
또한 삼성특검 당시 삼성그룹이 삼성물산의 해외 현지법인을 통해 막대한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에 비춰 볼 때, 카작무스 사건은 삼성그룹의 전형적인 비자금 조성 수법으로 의혹을 살 만 하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비자금 조성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차용규가 당시 Perry Partners를 통해 삼성물산과 삼성홍콩이 보유한 카작무스 지분을 인수한 자금조성 경위를 철저히 밝혀내는 것이 필요하다"며 "또한 과세적부심 절차에서 좌절되기는 했지만 국세청이 상당한 조사를 진행해 차용규에 대해 거주자라고 판단한 만큼, 검찰은 국세청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모두 확보해야 하고 필요한 경우 압수수색도 강행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