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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궐 제국' 1500년 만에 부활하나…중국이 긴장하는 이유

최근 터키와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으로 구성된 '투르크어사용국기구'(Organization of Turkic States·OTS)가 출범하자 중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약 1500년 전 중국을 위협했던 돌궐제국의 부활을 연상시키는 투르크계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밀착이 같은 투르크계인 신장 위구르 지역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OTS의 출범은 이 지역의 맹주를 꿈꾸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야심이 만들어낸 결실이어서 향후 중앙아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신돌궐 제국'의 부활인가…긴장하는 중국

돌궐(突厥)은 6세기와 8세기 사이에 오늘날 내몽골에서 흑해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지역 동서남북에 걸쳐 1천만㎢가 넘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민족이다. 원래 발음인 튀르크(Türk)를 한국식 한자음으로 음차한 명칭이 돌궐이다.

오늘날 투르크계 민족의 조상으로 알려진 돌궐은 가장 강성했던 시기에는 수나라의 수도 장안을 점령하고 조공을 받기도 했다. 중국이 통일국가로 강성해졌을 때는 고구려와 손을 잡고 중국에 맞섰다.

745년 후돌궐이 멸망할 때까지 약 200년에 걸쳐 돌궐의 침입에 시달려야 했던 중국은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돌궐족의 발흥에 대해 본능적인 두려움과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난 12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공식 출범한 OTS에 중국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OTS의 전신은 2009년 10월 설립된 튀르크 평의회(Turkic Council)다. 튀르크 평의회의 창립 회원국은 터키와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키르기스스탄 등 4개국이었다. 2019년에 우즈베키스탄이 가입해 회원국이 5개국으로 늘었다.

2020년에는 헝가리가, 올해 이스탄불 정상회의에서는 투르크메니스탄이 각각 참관국 자격으로 합류했다.

OTS 회원국을 합치면 인구만 1억6천만 명이고, 국토 면적은 450만㎢, 국내총생산(GDP) 합산 규모는 1조5천억 달러(약 1천780조원)에 달한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등 7개국 정상이 참가한 12일 이스탄불 정상회의에서는 '투르크어사용국 월드비전 2040'이란 명칭의 성명을 채택했다.

이 성명을 통해 OTS 회원국들은 2040년까지 외교정책과 지역안보, 경제 부문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회원국들이 글로벌 이슈에 대한 다자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 맹주를 꿈꾸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주도로 투르크어 사용국 간 연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바짝 긴장한 것은 중국이다.

분리 독립을 놓고 중국 중앙정부와 갈등이 끊이지 않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주민도 대부분 투르크계이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위구르인들은 종교적으로도 OTS 회원국과 가까울 뿐 아니라 언어나 민족적으로도 한 뿌리나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중국은 언어적 동질성과 민족주의적 연대를 통해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려는 OTS의 행보가 행여 신장 위구르 지역의 독립 움직임에 기름을 붓지 않을까 경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이달 16일 "튀르크 평의회의 명칭을 OTS로 바꾼 것은 범 투르키즘의 부상을 상징한다"며 "OTS는 특히 극단적 민족주의의 부상을 부추길 수 있으며 이는 민족간 분쟁을 심화시켜 지역의 안정과 안보를 해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레젭 타입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레젭 타입 에르도안 대통령 [AFP/연합뉴스 제공]

▲21세기 술탄 꿈꾸는 에르도안, '투르크족 연대' 모색

언어적·민족적 동질성을 발판으로 OTS를 정치세력화하려는 움직임의 중심에는 '21세기 술탄'을 꿈꾸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있다.

터키는 오랜 기간 숙원이던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해 노력했지만 회원국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사법권 독립 등을 요구하는 EU의 까다로운 기준에 막혀 꿈을 이루지 못했다.

2018년 대선과 총선 승리로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한 에르도안은 EU 가입이 여의치 않자 민족적 동질성을 가진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눈을 돌렸다.

미국의 중동 전문매체 알 모니터는 OTS 회원국 정상들이 언어적·민족적 동질성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와는 거리가 먼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또 최근 유럽,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하면서 외교적 기반이 취약해진 에르도안이 동질성을 가진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정치·경제적 협력을 통해 유라시아 지역에서 터키의 존재감을 부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르도안은 최근 터키의 인플레이션이 심화하고 리라화가 폭락하는 등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내부적으로도 궁지에 몰려 있다.

알 모니터는 에르도안이 OTS 결성을 통해 투르크어 사용 진영 리더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함으로써 대내외적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OTS가 추진하기로 한 회원국 간 교통 인프라 확충 계획이 실현될 경우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가장 효율적인 교통망이 새로 생기는 셈이어서 주목된다.

OTS에 참여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전통적인 실크로드의 중심국이자 중국이 추구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핵심 통로이기도 하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과 러시아의 반응이다.

전통적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러시아와 대(對)중국 포위망 구축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이 지역의 새로운 맹주를 꿈꾸는 에르도안의 행보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최근 인권 문제 등으로 터키와 사이가 썩 좋지 않지만 터키가 주도하는 OTS가 신장 위구르 지역의 분리 움직임을 부추겨 중국에 정치적 타격을 준다면 직간접적으로 지원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에는 이런 배경도 있다.

글로벌타임스는 "OTS로 명칭을 변경한 것은 이 기구가 정치화되고 정치적 동맹으로 업그레이드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명칭 변경에는 터키가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이는 터키의 지정학적 전략의 일환"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