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과 명상의 미학을 탐구해 온 김병구 작가의 작품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이 강릉 인월사 담마센타에 설치되며 공간과 예술이 어우러진 새로운 문화적 장면을 완성했다.
이번 작품은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제작을 시작해 올해 1월까지 이어진 집중 작업 끝에 완성된 것으로, 캔버스 전면에 색을 바꾸어 12차례 이상 물감을 중첩해 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작가는 아크릴 물감과 모델링 페이스트, 자연의 흙을 혼합한 질료를 나이프로 한 층씩 쌓아 올리며 시간의 축적과 반복의 의미를 화면에 담아냈다.
인월사는 지난 2023년 4월 11일 강릉 경포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강풍을 타고 확산된 화재로 사찰 경내 대부분의 전각이 불에 타 사라졌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월사는 다시 일어섰다. 사찰 재건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윤경식 회장이 맡아 무너진 터 위에 법당과 수행 공간을 다시 세움으로써 인월사가 수행도량으로서의 명맥을 이어가게 됐다.
인월사 주지 재범 스님은 김병구 작가의 작품을 감상한 뒤
“화엄의 바다에 부처님 눈썹달이 떴습니다”라고 표현하며 깊은 인상을 전했다.
건축가 윤경식 회장 역시 담마센타 벽면의 오방색 구조와 작품 속 반복적 색의 중첩이 서로 연결되는 흐름을 언급하며, 공간과 예술의 조화를 높이 평가했다.
김병구 작가는 반복과 노동의 개념을 작업의 본질로 삼아왔다. 섬마을 철문에 남은 여러 겹의 색과 해미읍성 성벽의 돌쌓기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시간의 흔적과 삶의 축적을 예술적 형식으로 전환해 왔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가 말한 ‘시지프스의 반복’에서 착안한 것으로, 반복 행위를 통해 명상적 평온과 내면의 고유성에 도달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김병구 작가는 1998년 첫 개인전 이후 10여 차례 개인전과 초대전을 개최했으며, 서울현대미술제 대상과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특히 2023년부터는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을 주제로 부평·서울·안양 등에서 순회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작가는 “반복된 질료의 중첩은 시간을 쌓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비우는 명상적 과정”이라며 “자연의 순환처럼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삶과 예술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 설치를 통해 인월사 담마센타는 수행 공간을 넘어 건축과 예술, 사유가 만나는 문화적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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