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한은 "경상흑자=원화 강세" 공식 붕괴...해외투자·저축 증가

음영태 기자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져도 원화 가치가 오르지 않는 구조적 변화가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17일 공개한 '우리나라 대외부문의 구조적 변화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해외투자 확대와 저축률 상승 등의 영향으로 기존 환율 공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 2015년 이후 달라진 환율 흐름

한은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우리나라는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했지만, 원/달러 실질환율은 오히려 상승했다. 이는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였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수출 호조로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하면 해외에서 원화 수요가 늘어 환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같은 상황에서도 환율이 상승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23년 이후에는 흑자 폭이 커질수록 환율 상승세도 강화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 민간 해외투자가 만든 ‘금융 충격’

이 같은 변화의 핵심 원인으로는 대외자산 구조 변화가 꼽힌다. 과거에는 경상수지로 벌어들인 자금이 외환보유액 등 공공부문에 축적됐지만, 최근에는 민간의 해외 투자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특히 해외 주식과 채권 투자 확대가 두드러지면서 자본 유출이 늘었고, 이는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했다. 2024년 기준 전체 대외 증권투자의 63.4%가 미국에 집중돼 선진국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한은은 이를 ‘금융 충격’으로 정의했다. 수출 증가가 환율을 낮추는 ‘상품 충격’과 달리, 해외 투자 확대는 환율을 끌어올리는 반대 효과를 낸다는 설명이다.

▲ 외환시장 변동성도 확대

민간 중심의 자산 운용 확대는 환율 변동성도 키우고 있다. 과거 공공부문 중심 구조에서는 외환 수요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지만, 현재는 민간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시장에 즉각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외환시장은 글로벌 금융 환경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 고령화가 만든 ‘저축수요 충격’

저축률 상승 역시 중요한 변수로 지목됐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2011년 이후 저축 성향이 강화됐고, 이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졌다.

소비가 줄면 국내 공급이 상대적으로 과잉 상태가 되고, 기업은 가격 인하를 통해 재고를 해소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국내 물가가 해외보다 빠르게 낮아지면 원화 가치가 하락 압력을 받는다.

동시에 수출은 늘고 수입은 줄어 경상수지 흑자는 확대되는 구조가 형성된다. 한은은 이를 ‘저축수요 충격’으로 설명했다.

환율
[연합뉴스 제공]

▲ 원화, 주요국보다 금융충격에 민감

보고서는 원화가 다른 주요국 통화보다 금융 충격에 더 크게 반응한다고 분석했다. 금융충격에 대한 환율 반응 계수는 한국이 0.65로 일본, 미국, 영국 등 주요국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이는 외환시장 거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투자 주체가 다양하지 않은 구조적 한계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장 깊이가 얕을수록 자본 이동에 따른 환율 변동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 “외환시장 구조 개선 필요”

한은은 외환시장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MSCI 선진국지수 및 WGBI 편입을 통한 자본 유입 확대와 투자자 다변화가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외환시장 심도가 깊어질수록 단기적인 수급 불균형에 따른 환율 변동성이 완화되고, 금융 충격에 대한 민감도도 낮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은 "경상흑자=원화 강세" 공식 붕괴...해외투자·저축 증가 : 경제 : 재경일보